<노라 없는 5일>
멕시코 여성 감독의 ‘노라없는…’
모스크바 감독상 등 받은 수작
모스크바 감독상 등 받은 수작
장례는 소설 또는 영화에서 즐겨 다룬다. 망자를 땅에 묻기 위해 주변인이 모두 모이면서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긴장, 그리고 화해에 이르는 보편적인 구조에다 망자와 주변인들의 개별성으로 인해 경우마다 특수성을 띠어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다.
<노라 없는 5일>(감독 마리아나 체니요)이 영화 변방인 멕시코의, 33살 여성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31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감독상에다 크고 작은 세계영화제에서 상 12개를 받은 것은 이러한 장례의 미덕 덕이다. 감독의 자전 스토리를 유머가 곁들인 탄탄한 구조에 얹고 배우들의 흡인력 있는 연기까지 더해 ‘젊은 여성’ 감독의 섬세함은 더욱 빛난다.
20년 전 이혼하고 전남편 호세의 맞은편 아파트에 혼자 사는 노라. 유대인의 명절 유월절을 앞두고 그는 성대한 만찬을 준비한다. 식탁에 레이스를 깔고 10명이 사용할 접시와 와인잔을 올려놓고, 요리 재료는 조리법 메모를 붙여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는다. 포트 가득 커피를 끓인 다음 몇 통의 전화를 돌린다.
그 뒤 카메라는 호세를 따라간다. 다음날 전처가 주문한 물건을 대신 수령한 호세는 그것을 들고 노라의 집을 찾아온다. 기척 없음에 그때껏 갖고 있는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온 호세는 고요한 가운데 혼자 끓는 커피와 정갈하게 준비된 식탁을 발견한다. 무슨 일이지 하고 빼꼼 열린 침실을 들여다보고 침대에 누운 채 죽은 노라를 발견한다. 절친한 의사 알베르토를 불러 사망을 확인하고 유대인 랍비를 불러 장례를 상의한다. 이때는 목요일. 랍비는 만일 오후 3시까지 매장을 하지 못하면 일요일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금요일이 유월절 첫날이고 다음날은 유대교가 안식일로 지키는 토요일이라는 것. 시신과 함께 밤을 보내는 호세한테 시계추 소리는 그로테스크하게 들린다. 시계를 세우려고 벽에서 떼어내니 뒷면에 새겨진 문구가 새삼스럽다. ‘영원히 함께할 시간과 내 사랑을 그대에게 -호세.’ 다음날 문득 전처의 자살이 정교하게 준비된 것임을 알아채고 “일욜까지 기다리나 봐라” 하면서 개신교 쪽 묘지에 전처를 묻을 구멍 하나를 주문하고 관을 들여오는 등 장례를 준비한다. 하지만 항공편이 없어 아들 루벤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장례 추진을 포기한다. 이때 우연히 식탁 밑에서 노라와 알베르토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면서 호세의 심사가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요리법 메모를 바꿔 붙이고, 랍비한테 햄과 소시지가 듬뿍 얹힌 피자를 권해 모욕을 준다.
노라의 절친 파비아나, 아들과 며느리, 두 손녀, 옛 처제 등이 잇따라 도착하고 지난 상처들이 헤집어지면서 갈등과 긴장은 높아진다. 이들은 서로 아는 만큼 부대끼고 결국엔 화해의 만찬을 함께한다. 카메라가 비춰주는 한개의 빈 의자가 결코 외롭지 않다. 유대교 장례 풍습과 멕시코인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보너스다. 21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사진 프리비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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