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FM’의 유지태
잔혹 범죄스릴러 ‘심야의 FM’
네 말 따라 범죄청소부 됐는데 떠난다고?
수애·유지태 빛나는 연기…말의 본질 고민
네 말 따라 범죄청소부 됐는데 떠난다고?
수애·유지태 빛나는 연기…말의 본질 고민
영화 <심야의 FM>은 아름다운 여성 디제이와 열혈 남성 청취자 사이에 생방송 두 시간여 동안 벌어지는 사건이다.
새벽 2~4시 라디오 프로그램 ‘한밤의 영화음악실’ 디제이를 맡아온 고선영(수애). 자극적인 클로징 멘트로 뉴스앵커를 도중하차한 적이 있는 그가 이번에는 딸을 위해 5년 동안 잡아온 마이크를 놓기로 한다. 언어장애를 가진 딸한테 목소리를 찾아주려 미국 이민을 결심한 것. 진국 남성 청취자를 초대해 놓고 마지막 생방송을 시작하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딸을 봐 달라고 부탁한 여동생의 전화번호인데 목소리는 남자다. 가족을 인질로 하고 있으니 자기가 구성한 시트대로 방송을 하라는 요구다. 그는 진짜 열혈 청취자인 택시운전사 한동수(유지태)다. 이때부터 선영과 열혈 팬인 한동수의 이상한 생방송이 시작된다.
영화는 고선영의 시각에서 감상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맞은편 주인공 한동수의 시각으로 뒤집어 보기 어렵지 않다. 한동수는 한마디로 말해 스토커. 선영이 튼 영화음악과 앞뒤 멘트를 모두 기억함은 물론 선영의 사생활까지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금과옥조처럼 따랐다는 것. 앵커 시절 사회정의에 불타는 선영은 파렴치하거나 비열한 범죄 또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풀려나는 범인 등을 보도하면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멘트를 날렸다. 그때마다 한동수는 ‘정의의 사자’가 되어 멘트 대상들을 청소해 왔다. ‘영화음악실’에서도 선영이 말을 뱉고 동수가 이를 행동에 옮기는 관계는 계속되어 정의의 사자는 어느새 흉악한 ‘연쇄 살인마’가 돼 있었다. 그것도 범행 뒤 자신의 범죄를 당당히 신고하는 ‘또라이 살인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음지에서 꿋꿋하게 활약해온 동수한테 선영의 프로그램 중단선언과 미국 이민 결정은 ‘뚜껑이 열리는’ 일이었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함께해 왔다고 믿어온 ‘동업자’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결국 동수는 선영의 가족을 인질로 하여, 그동안 선영이 자기한테 내린 청소명령 또는 행동의 자양이 되었던 영화음악과 멘트를 엮어 자신이 영웅임을 인정받고자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게 <택시 드라이버>의 삽입곡과 ‘영웅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따위의 멘트. <택시 드라이버>(1976)는 로버트 드니로와 조디 포스터가 주연을 맡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작품. 베트남전 참전군인 트래비스는 길고 멍한 밤을 이겨내려고 야간 택시운전사가 된다. 하지만 그가 빛나는 뉴욕 거리에서 발견한 것은 타락하고 더러운 세상이다. 거리를 배회하는 10대 매춘부 아이리스를 만나고부터 그는 머리를 짧게 깎고 도시의 청소부로 나선다. 동수는 말하자면 수애를 통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머리가 짧은 택시 운전사가 되었고 그의 멘트를 좇아 ‘영웅’ 트래비스가 되었던 것이다.
방송이 애초 구성에서 벗어나 뒤틀어지자 또 뚜껑이 열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작가와 피디와 예능국장이다. 작가는 “언니 왜 이라노?”라고 의아해하고 피디는 “프로그램을 말아먹으려냐”며 핏대를 올리지만 사정을 알고 나서는 선영의 처지에 동조한다. 하지만 한발짝 떨어진 국장은 그게 아니다. “전파가 사유물인 줄 알아?” 하면서 중앙조정실의 코드를 간단히 뽑아버린다. 이쯤에서 선영과 동수가 방송진행의 주도권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것은 하릴없어 보인다. <심야의 FM>은 곧 겉볼안. 애끊는 표정에 달리고 달리는 수애, 멍키 스패너의 무표정을 닮은 유지태의 연기가 빛나는 잔혹 범죄스릴러지만 속살은 말, 방송, 영화의 본질을 논하는 고급담론이다. 말은 속절없는 것. 한번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다. 방송 역시 말단 스피커를 만나면 가뭇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듣는 자의 내면에 놀라운 희망을 심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영화 역시 어두컴컴한 데서 번쩍번쩍 시끌시끌 90분 남짓 동안 흠뻑 빠져든다. 밀폐공간을 나와 현실로 돌아오면 아득해진다. 이들 미디어는 아무리 지지고 볶아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끄면 그만이고 안 보면 무람없다. 선영이 방송에 몰입하느라 혼자 남겨진 딸은 수년 동안 언어장애였지만 한꺼번에 쏟아진 일대일 말할 기회에 말문이 터지고, 한바탕 소동에 넌더리 난 선영이 라디오를 꺼버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지 싶다. 그렇다고 영화까지 싸잡으면 도대체 영화를 보란 말인가 보지 말란 말인가. 14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영화사 하늘 제공
‘심야의 FM’의 유지태
방송이 애초 구성에서 벗어나 뒤틀어지자 또 뚜껑이 열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작가와 피디와 예능국장이다. 작가는 “언니 왜 이라노?”라고 의아해하고 피디는 “프로그램을 말아먹으려냐”며 핏대를 올리지만 사정을 알고 나서는 선영의 처지에 동조한다. 하지만 한발짝 떨어진 국장은 그게 아니다. “전파가 사유물인 줄 알아?” 하면서 중앙조정실의 코드를 간단히 뽑아버린다. 이쯤에서 선영과 동수가 방송진행의 주도권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것은 하릴없어 보인다. <심야의 FM>은 곧 겉볼안. 애끊는 표정에 달리고 달리는 수애, 멍키 스패너의 무표정을 닮은 유지태의 연기가 빛나는 잔혹 범죄스릴러지만 속살은 말, 방송, 영화의 본질을 논하는 고급담론이다. 말은 속절없는 것. 한번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다. 방송 역시 말단 스피커를 만나면 가뭇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듣는 자의 내면에 놀라운 희망을 심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영화 역시 어두컴컴한 데서 번쩍번쩍 시끌시끌 90분 남짓 동안 흠뻑 빠져든다. 밀폐공간을 나와 현실로 돌아오면 아득해진다. 이들 미디어는 아무리 지지고 볶아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끄면 그만이고 안 보면 무람없다. 선영이 방송에 몰입하느라 혼자 남겨진 딸은 수년 동안 언어장애였지만 한꺼번에 쏟아진 일대일 말할 기회에 말문이 터지고, 한바탕 소동에 넌더리 난 선영이 라디오를 꺼버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지 싶다. 그렇다고 영화까지 싸잡으면 도대체 영화를 보란 말인가 보지 말란 말인가. 14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영화사 하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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