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박수영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
‘아동성폭행’ 소재 선입견 뒤집어
‘아동성폭행’ 소재 선입견 뒤집어
토박이들은 뜨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뜨내기는 말하자면 잔잔한 우물에 침입한 미꾸라지 같은 존재. 오랫동안 그들끼리 살아온 마을에는 기억조차 못하는 온갖 음험한 것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 작은 움직임에도 구정물처럼 솟아오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뜨내기에 대한 안티는 ‘텃세’라 하기도 하고 ‘통과의례’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흔하기는 따돌림에 심하면 죽음까지 부른다.
설화 속 통과의례 이야기가 요즘의 옷을 빌려입고 나온 게 <돌이킬 수 없는>(감독 박수영)이다.
어디 요즘 그런 마을이 있을까마는 이웃집 마나님 속곳 개수까지 짐작할 법한 마을. 꽃집 홀아비(김태우)의 애지중지 일곱살 난 딸이 사라진다. 애글타글 피폐해가던 홀아비 눈에 의심쩍은 사람이 하나 껌벅 들어왔으니, 얼마 전 흘러들어온 자전거 대여점 총각(이정진)이다. 마침 총각이 성폭행 전과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홀아비는 물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마을 공인 범인’으로 지목한다. 마을사람과 밀착된 경찰도 마찬가지다. 총각의 일거수일투족은 성폭행 살인과 연관돼 대여점은 박살나고, 동생이 교사로 있는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 마을사람들한테 총각은 심증이 가지만 물증이 없는 아동성폭행 살인범이다.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집단 따돌림은 극에 다다른다. 마을사람들이나 대여점 총각이나 미치는 거다.
영화는 범인으로 지목당한 뜨내기 총각이 아이를 잃고 이성을 잃은 홀아비한테 살해되기까지 과정을 차갑게 그린다. 홀아비의 광기는 집단광기에 휩싸인 마을을 대표한다. 아이를 잃었다는 명목은 토박이들의 알량한 끼리끼리 정서에 힘입어 폭력의 명분이 된다. 총각집 애완견 죽이기, 자전거포 박살내기, 멱살잡이와 구타는 ‘마을 공인 범인’한테 허락된 ‘마을 공인 폭력’이다.
위험한 토박이가 된 김태우나 영락없는 뜨내기가 된 이정진의 연기가 뚜렷하다. 하지만 박수영 감독은 두번째 장편임에도 벌써 음험하다. 흔해 빠진 ‘아동성폭행’ 소재를 180도 뒤집어 범인으로 몰린 사람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가 웅얼거리는 투로 말하는 집단광기는 툭하면 가스통을 들고 나서는 사람들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고 원시시대부터의 통과의례를 아련히 상기시킨다.
<돌이킬 수 없는>은 우물의 미꾸라지. 토박이들이 진을 치고 엇비슷한 소재를 우려먹는 영화판을 휘젓는다. 부디 영화 속 뜨내기 총각처럼 어이없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 11월4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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