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사진 가운데) 감독·마이클 더글러스(오른쪽)·샤이아 라보프(왼쪽)
지구촌 재난의 진앙지인 월가
낭만적·비현실적으로 그려내
예리한 깨우침 없이 대중 현혹
감독의 기회주의 편승 엿보여
낭만적·비현실적으로 그려내
예리한 깨우침 없이 대중 현혹
감독의 기회주의 편승 엿보여
커터니어스 교수의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리뷰
올리버 스톤 감독이 23년 만에 내놓은 <월스트리트>의 속편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미국 9월23일 개봉, 한국 10월21일 개봉)는 거장의 새 작품이자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화제에 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속편을 만든 것을 두고도 월스트리트가 세계경제를 거듭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류를 못 읽어 옛 성공의 명성에 다시 기댄 것이다 등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에세이스트 그레고리 커터니어스가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리뷰를 보내왔다. 그는 정신의학 전문의로서 터프츠, 하버드, 보스턴 의대의 강의병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버클리 음대 및 스키드모어 칼리지의 외래교수를 지냈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오래 활동했고, 미국신경정신과협회의 사정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은퇴 후 미술과 언어, 교육 및 영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칼럼과 에세이를 출판해온 그가 이번 영화를 들여다봤다. 이 영화에 대해 그레고리가 매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이유는 무엇일까?
올리버 스톤(사진 가운데) 감독의 새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의 주인공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오른쪽)는 월스트리트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게임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신념을 요약한다. 이는 재치 있고 매력적인 표어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훨씬 더 교활하다. 월스트리트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상 돈뿐이며, 명백한 게임은 월스트리트를 소재로 돈벌이가 되는 피상적인 영화를 만든 일뿐이니까.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이기 때문이든 주제 때문이든, 영화를 보러 가면서 나는 정치적으로 도발적이며 자극적인, 적어도 깨우침을 주는 영화를 기대했다. 혹자는 이 영화가 천재의 작품, 영화 속의 영화, 도덕적 파산을 도덕적 파산 속에 담은 영화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이 영화를 보지 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거기서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내실 있는 정치적 입장을 만나기를 기대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최근 영화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가 구체적인 역사의 전개를 풍부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조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이 영화는 진부한 로맨스이자 서스펜스로, 기본적으로 피상적이고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월스트리트의 행태를 깊이 있게 천착함으로써 관객의 도덕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행태로 인해 세계경제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음을 고려할 때, 월스트리트를 낭만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그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영화 전체를 통해 이 ‘도덕시험’에 거듭 실패하고 있다. 우선 깨우침을 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실패다. 관객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재정적·정치적 막후협상을 이해하려면 실제 사건들을 사전에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시한 선과 악은 모두 비현실적이고 별 의미 없이 그려져 있다. ‘사악한’ 은행가(조시 브롤린)는 여기서 다 예를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면에서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경제 위기를 맞아 자살을 하는 ‘좋은’ 은행가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살한 은행가는 실제로 단 한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다. 자신들의 행태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다 재산을 많이 잃은 것도 아니어서 자살할 이유가 없다. 게코의 딸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의식이 있는 시민이며, 탐욕과는 관계없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역시 아버지가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세탁하는 데 가담하는 등 부도덕한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시 피상적으로는 ‘환경’ 투자가로 사회의식이 있는 젊은이로 그려진 그녀의 미래의 남편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미래의 아내를 속이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게코가 자신이 불법적으로 얻은 자금의 일부를 뜻밖에도 ‘양심적’으로 돌려주는 마지막 행동은 단지 그가 미래의 손자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미 부당한 방법으로 획득한 자금을 수익을 올릴 만한 곳에 투자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음모론자들이 제멋대로 꾸며낸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며 엄청난 세력을 행사하는 탐욕적인 실체로 현재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재난을 초래한 장본인이다. 물론 올리버 스톤한테 특정한 유형의 영화를 만들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는 능력, 대중의 심리를 파고드는 그의 기술 등을 생각해 보건대, 그가 지금 이 시점에 월스트리트를 피상적인 낭만적 ‘게임’으로 환원시키는 장편영화를 만든 것은 기회주의적 행위이며 대중을 현혹시킬 위험이 큰 일이다. 불행하게도, 올리버 스톤 감독과 월스트리트는 이 영화 덕분에 여러모로 이득을 볼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퇴행적일지라도. 서글프게도 그는 궁극적으로 옳다. 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그의 돈도 포함해서.
그레고리 커터니어스/전 하버드의대 강의병원 교수
그레고리 커터니어스/전 하버드의대 강의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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