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감독 새영화 ‘스카이 크롤러’
대리 전쟁에 동원된 젊은이들
희생 강요하는 현실과 판박이
전투신 3D·일상신 2D로 묘사
대리 전쟁에 동원된 젊은이들
희생 강요하는 현실과 판박이
전투신 3D·일상신 2D로 묘사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가 6년 만에 신작 <스카이 크롤러>를 내놨다. 오시이 마모루는 세계 에스에프 영화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은 <공각기동대>(1995)를 만든 인물. 뤼크 베송의 <제5 원소>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가 그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제임스 캐머런,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향을 받았다고 할 만큼 <공각기동대>와 그 후속작 <이노센스>는 인간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놀라운 상상력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펼쳐 보였다.
<스카이 크롤러>는 두 민간 전쟁회사가 죽고 죽이는 전투를 벌이고, 그 참상을 지상에 중계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유지한다는 설정. 일본 로스톡사와 유럽연합 라우테른사는 공중전 쇼에 적합한 프로펠러 전투기를 보유하고 텔레비전 시청자를 위해 기획성 전쟁을 연출한다. 평화의 존속을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전쟁게임을 벌이는데, 가짜 살육이어서도 안 된다. 멈추지 않는 공중전을 수행하는 조종사들은 앳된 소년·소녀. ‘키르도레’라고 부르는 이들은 유전자 억제제 실험으로 만들어진 부산물로, 사춘기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고 전사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 까닭에 밥 먹고 하는 일은 전쟁놀음이다.
영화 도입부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속에서 벌어지는 현란한 공중전. 입체음향을 동반한 3디 애니메이션은 공중전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전투기가 활주로에 내려 지상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화면은 롱테이크의 2디로 바뀌는데, 하늘-3디, 땅-2디 이분법은 영화 내내 지속된다. 주인공인 신병 간나미 유이치가 여군 구사나기 스이토가 단장인 비행단에 배속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간나미는 신참인데도 공중전에 능숙한 에이스이고 구사나기는 초면인 간나미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데서 이들이 심상찮은 관계임이 암시된다. 구사나기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여덟살 난 딸을 둔 미혼모이고 간나미는 전투중 또는 다른 이유로 사망한 에이스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복제된 키르도레로, 여덟살 소녀가 이들의 소생일지도 모른다는 것.
영화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인조인간들이 삶과 죽음을 되풀이한다는 에스에프지만 아웃사이더로 머물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득권을 선점한 기성세대는 그들만의 안정과 평화를 대물림하는 반면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강고한 벽에 가로막혀 일회용 소모품으로서의 삶을 계속한다.
“늘 같은 길을 걸어도 밟고 지나가는 곳은 매일 다르다. 늘 다니는 길이라도 경치는 늘 변한다. 이것만으로도 살아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간나미의 독백은 오시이 감독이 젊은이한테 주는 작은 위로의 말이다. 삶이 의미없이 반복될지라도 순간순간을 귀하게 여기며 주어진 운명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 28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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