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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근사한 전개와 안일한 결말 ‘데블’

등록 2010-11-01 10:07

영화  <데블>
영화 <데블>
허지웅의 극장뎐 /

<데블>은 M. 나이트 샤말란이 총제작을 맡은 삼부작 ‘나이트 크로니클’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쉽게 말해 샤말란이 자기 이름을 걸고 세 편의 호러영화를 제작하는데, <데블>이 이 야심만만한, 그러나 아기자기한 기획의 문을 여는 얼굴이라는 이야기다. 샤말란의 근작이 대부분 형편없었다는 건, 최소한 흥행에 있어서 거의 재앙에 가까웠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의 최신작 <라스트 에어벤더>는 눈뜨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감독이고 그의 흥행하지 못한 다른 영화들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라스트 에어벤더>만큼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국외의 많은 영화 전문 사이트들도 샤말란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

존 에릭 도들이 연출한 <데블>은 샤말란의 근작, 그러니까 <라스트 에어벤더>에 비해 곱절은 연출이 좋다. 컷은 가장 좋은 순간 교체되고 캐릭터도 낭비되지 않으며 공포효과도 쇼크보다 서사 자체에 기반한다. <데블>은 누군가의 투신자살을 비추며 시작된다. 필라델피아 한복판의 고층 빌딩이 주요 무대다. 자살을 조사하는 형사는 과거 일가족을 뺑소니로 잃었다. 이제 겨우 과거의 상흔으로부터 벗어난 형사는 지친 표정으로 사건을 조사한다. 같은 시간, 빌딩에선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섯 명이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다. 곧 구조될 줄 알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우연과 사고로 상황은 갈수록 꼬여만 간다. 결국 엘리베이터에 잠시 조명이 나간 동안 첫번째 희생자가 발생한다.

<데블>은 오랜만의 정통 오컬트 영화다. 빌딩의 사고에는 악마가 개입하고 있다. 기도에 여념이 없는 광신도 캐릭터는, 다른 영화라면 신경 쓸 이유가 없겠지만 최소한 이 영화에서만큼은 진실을 가늠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엑소시스트>와 <오멘>이 촉발한 오컬트 영화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다. 마귀가 존재하고,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독교 교리에 근거한 행동뿐이다. 이같은 정통 오컬트 영화의 유행은 오래전에 마감됐다. 그것을 <데블>이 새삼스레 꺼내어 놓는다.

전반적인 영화의 만듦새는 근사한 수준이다. 음악의 쓰임도 적절하고 한동안 미국 호러영화를 뒤흔들어 놓았던 일본 호러영화의 관습적인 자취 또한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건 제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에 기반한 사건 해결의 방법만큼은 촌스럽고 기계적이다. <데블>이 정통 오컬트의 서사 체계를 자처한 이상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용서와 사랑만이 악마를 물리칠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확실히 아쉬움이 남는다. 정통 오컬트의 구조를 복기했더라도 결말을 이 정도로 순진하게 풀 필요는 없었다. 이 부분에서 샤말란의 자취가 느껴진다. 샤말란은 그의 전작을 통틀어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사실로 드러날 때, 그리고 그 사실이 증명되기 전까지 누구보다 의구심을 품고 있던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뒤흔들어질 때의 서사적 쾌감을 샤말란은 놓치지 않아왔다. 이는 명백하게 기독교 전도 논리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이다. 그러나 샤말란이 <식스센스> 혹은 <싸인>의 갈등을 풀 때와는 달리, <데블>은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장르적 선택지를 제외하고 가장 편한 결말에 정착한다.

이는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악수로 통할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사찰을 돌아다니며 무례를 범하는 기독교인들이 뉴스를 장식하는 한 말이다. 도장깨기 일삼다가 엽문 만나 뒈지게 맞으면 정신차리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데블>에는 도움이 안 될 터. 조금 더 영리한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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