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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좀 불편하신가요? 보는대로 느끼세요

등록 2010-11-01 20:06수정 2010-11-01 20:48

여성학자 출신 영화감독 트린민하
불친절한 의미 전달·느슨한 구성
사실적 다큐·영화로 기존관습 깨
“새로운 경험·해석은 관객들의 몫”
“나는 잘 만든 작품을 통해 한 가지 메시지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양한 관객들이 다양한 측면을,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경기도미술관 개관 4돌 기념 특강을 위해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의 여성학자 트린민하(58·찐민하·사진)는 까칠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살가웠다. 유시(UC)버클리대 교수(젠더·여성학·수사학)인 그는 독립영화 감독을 겸해 <라상블라주>(1982) <벌거벗은 공간-삶은 둥글다>(1985), <성은 베트요 이름은 남>(1989), <콘텐츠를 향해 쏴라>(1991), <사랑이야기>(1995), <4차원>(2001), <밤의 여로>(2004) 등 다큐멘터리·극영화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여성의 관점에서 제3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베트남과 일본 등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의 작품은 독특하고 실험적이어서 호오가 분명하게 갈린다. 감독의 일관 작업을 거친 탓에 메시지가 한마디로 요약 가능한 기성 작품들과 다르기 때문. 서부 아프리카, 특히 세네갈 원주민들의 삶을 다룬 <라상블라주> <벌거벗은 공간>은 “다큐멘터리가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삽하고 불친절하다. 그들의 노동과 생활 속에 밴 노래, 춤, 문양 등을 보여주는데, 트린민하 감독, 유럽인, 원주민 3명의 화자가 각자의 시각으로 미완성의 단어들을 툭툭 던지는 식이다. 있는 그대로 최대한 보여주되 이해와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 그동안의 다큐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통조림 된 지식’의 형태로 설명돼 왔다”는 비판이다. 원주민들이 아시아인인 자신을 이웃동네에서 온 사람으로 차별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사랑이야기> <밤의 여로> 등 극영화도 마찬가지. 기승전결의 극적 구조 없이 몇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엮인 채 각각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분리된 채 각각의 이야기를 하는 예술영화와 정치영화를 통합하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관객들이 감독의 일방적인 메시지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는 물론 영화 자체를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700여컷으로 이뤄진 <라상블라주>는 컷의 이음새가 훤히 보이고, <밤의 여로> 등 극영화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애들과 개를 빼고는 연기가 개판이다”라는 평을 받는다. “나는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연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맥락을 알려주지 않은 채 연기를 주문한다. 그러면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제스처가 나온다. 관객들은 그 제스처의 총합을 통해 독립적인 내용을 경험하게 된다.”

그와 함께 작업하는 이들의 80%가 여성. 여성주의적 내용의 작품을 여성주의적 방법으로 만드는 데 이상이 없다. 이심전심이 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남성들이 참여하는 후반 작업에서는 난관에 부닥친다고 했다. 왜 목소리가 세개냐, 이음새를 왜 남겨두느냐 등의 질문에 시시콜콜 얘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시, 그림, 작곡에서의 재능을 다 녹여낼 수 있는 장르여서 영화를 미디어로 선택했다”며 “옛 아시아권에는 시·서·화 일체이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영화사 이름도 ‘문 기프트 필름스’다. 낮에는 모든 것이 구분되고 차별이 존재하지만 어스름 달이 지배하는 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는 자신의 작품이 ‘달의 선물’이라고 했다.

가냘픈 동양여성으로 일인다역이 힘들지 않을까. “저 여자가 과연 무엇을 알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이나 저널리스트들이 테스트를 하곤 한다. 이제는 익숙해서 괜찮다.”


그의 작품은 11월 한달 동안 매주 토요일 3시반 경기도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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