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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25년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그날…그 사랑이여!

등록 2010-11-05 09:53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아르헨티나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퇴직 검찰수사관 ‘추억 더듬기’
현재·과거 교차하는 살인사건
스릴러와 로맨스 잘 버무려져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서면 텅 빈 가슴과 만난다. 한해 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자문은 그동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가로 넓혀진다. 열정으로? 두려움으로? 사랑으로?

아르헨티나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감독 후안 호세 캄파넬라)는 퇴직한 검찰 직원이 소설을 쓰며 과거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삶의 진실에 관한 얘기다. 주인공 베냐민 에스포시토가 비몽사몽간에서 떠올린 단어처럼 삶은 ‘두려움’(TEMO)일까? 1970년대 페론 치하의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소재임을 떠올리면 그럴 법도 하다.

25년이 지난 현재도 그 사건이 주인공의 머리를 맴도는 까닭은? 윗선에서 가짜 범인을 세워 덮으려 할 정도로 냄새가 풀풀거리는 것 외에 다른 느낌이 겹치기 때문. 사건을 떠맡은 에스포시토는 피살된 여교사 릴리아나의 사진첩에서 거듭 등장하는 하나의 ‘시선’을 발견한다. 처녀적 그의 주변을 맴돌던 고메스라는 인물의 뜨거운 눈동자가 그것. 범인임을 직감한 그는 본격 추적에 나선다. 하지만 낌새를 눈치 챈 고메스는 잠적하고, 위에서 수사중단 지시가 내려오면서 사건은 강제 종결된다. 1년 뒤 어느 역. 범인과 조우를 기대하며 역으로 ‘출근’하는 여교사의 남편 모랄레스를 발견한 에스포시토는 상사를 설득해 사건의 봉인을 뜯는다. 고메스의 위험함과 모랄레스의 절박함에서 여성 상사 이레네를 향한 자기의 시선을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칫 미제사건이 될 뻔한 사건은 보조직원 산도발에 의해 풀린다. “집, 여친, 종교, 신… 다 바꿀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할 게 있으니 바로 그게 열정이다.” 고메스가 고향집에 보낸 편지에 암호처럼 나오는 이름들이 모두 축구선수인 점을 단서로 축구장에 잠복한 결과 여느 아르헨티나 남성들처럼 축구광인 그를 검거한다. 사건은 종신형감인 그가 곧 풀려나 보복을 꾀하면서 다시 복잡하게 얽힌다. 그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정부가 반정부 인사 색출·검거를 위해 고용한 프락치였던 것.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A’자가 찍히지 않는 타자기로 소설을 완성해가는 현재와 살인사건이 해결돼 가는 20여년 전 과거를 교직하면서 영화는 에스포시토 스스로 가둬뒀던 이레네에 대한 열정을 확인해간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기는 하지만 자기는 보잘것없는 고졸 수사관, 이레네는 귀족에다 유학을 다녀온 검찰간부. 귀족-평민 신분이 엄연하고 상명하복이 분명한 조직 속에서 이레네는 넘을 수 없는 두려움일 터. 보조직원 산도발이 피살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에스포시토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시골로 피신한다. 이레네와 에스포시토가 헤어지던 그날. 열차가 출발하는 가운데, 이레네가 달려오고, 차창 안쪽에는 에스포시토의 시선이 안타깝다. 소설의 진척은 곧 영화의 완성. 두 장르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급하게 회전하면서 결말로 치닫는 구조가 무척 탄탄하다.

이레네와 헤어져 지낸 에스포시토의 20년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검찰 근무 때는 일에 대한 열정 외에 제도와 관습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동력이었다면 이레네 없는 세월은 허수아비 없는 빈 들녘과 흡사하지 않았겠는가.

사랑은 두려움과 한끗 차. 제도의 두려움은 닫힌 문처럼 강고해 보이지만 문이 상징적이듯 제도 역시 그런 것. ‘A’자가 깨진 타자기는 ‘TEMO’(두려움)라고 찍지만 그것이 ‘TEAMO’(사랑)임을 모르지 않을 터. 주인공처럼 굳이 손으로 ‘A’자를 써넣고서야 그게 ‘사랑’임을 알게 되어도 썩 늦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가슴이 허한 사람들한테 바치는 가을인사다. 그런데 아름다운 아내를 잃은 모랄레스는 무슨 힘으로 나머지 삶을 버티고 살아갈까. 11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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