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이다. 원제는 <그들 눈동자 속의 비밀>인데, 국내 개봉명만 보면 흡사 싸구려 판타지 영화 제목처럼 느껴져 관람에 대한 열의를 반감시킨다. 하지만 오해 마시라.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국내 개봉명과 달리 꽤 근사한 영화다.
영화는 노년 초입의 벤자민이 25년 전 사건을 소설로 쓰면서 시작된다. 벤자민은 검사보로 일했던 25년 전 당시 처참하게 강간, 살해당했던 어느 여자를 추억한다. 다른 검사보가 떠넘기는 바람에 억지로 사건 현장에 당도했던 벤자민은 살해당한 여자의 모습 앞에 얼어붙는다.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사건에 집착하게 된다. 평소 바른말 하기로 유명한 벤자민은 판사에게 미움을 사고 있다. 판사는 사건을 대충 덮어 버리지만 벤자민은 독자적으로 수사를 계속해나간다. 피해자의 남편을 만나 앨범을 보던 도중, 벤자민은 사진 속 시선이 수상한 한 남자에 주목하게 된다.
불굴의 의지로 결국 범인을 잡아내는 벤자민. 잡아떼던 범인은 심문 과정에서 전모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당시는 아르헨티나에 돌아온 후안 페론이 다시 정권을 잡았던 시기. 범인은 독재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제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죄를 씻는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완장까지 차게 된다. 강간 살인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출세하게 된 범인을 바라보며 벤자민은 분노한다. 그러나 자신을 감싸려다 죽음을 당한 친구의 모습 앞에, 결국 벤자민은 평소 그렇게 사랑했던 상관 이렌느를 남겨 두고 지방에 칩거한다. 다시 25년 후의 현재. 법관이 된 이렌느와 재회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상의하던 벤자민은 문득 당시 피해자의 남편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스릴러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동기는 여인의 죽음과 그 전말을 밝히려는 검사보의 노력으로부터 얻어진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는 좋은 스릴러가 아니다. 다만 좋은 드라마이기는 하다.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꽉 짜인 서사 위에서 원인과 결과를 규명해가며 관객의 심장을 옥죄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단히 우직한 태도로 무덤덤하게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털어놓고 있을 뿐이다. 배우들의 멋진 연기에 힘입어, 이런 영화의 전략은 효과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에서 벤자민이 범인을 검거하는 경기장 시퀀스는 꼭 추천하고 싶다. 축구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항공 촬영으로부터 시작해 먼지처럼 많은 군중을 헤집고 다시 범인을 추격하다가 급기야 경기장 밖으로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단 한 번도 컷을 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진행된다. 기술적으로 거의 묘기에 가까워 보이는 이 시퀀스는 올해 등장한 영화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단연 멋진 장면이다. 놓치지 마시길.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를 연출한 후안 호세 캄파넬라는 전에도 오스카와 인연이 있었다. 그의 2001년도 작품 <신부의 아들> 또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된 이력이 있다. 아르헨티나 영화로 수상을 했지만 사실 그는 거의 할리우드에서 작업해왔는데, <30 록>과 <로 앤 오더>, 그리고 <하우스 엠디(MD)>에서 다수의 에피소드를 연출한 바 있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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