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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어떤 타자성을 선택할지가 문제

등록 2010-11-22 09:12

영화 <초능력자>
영화 <초능력자>
[남다은의 환등상자] <초능력자>
자신의 의지만으로 시간을 멈추고 사람들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는 초인(강동원)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이 남자는 그저 평범하지 못해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존재로 보인다. 그는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대부업체들로부터 돈을 훔쳐 종종 생활비를 충당해왔다. 그런 그 앞에, 그가 조종할 수 없는 남자, 규남(고수)이 등장하자, 초인의 악한 잠재성이 깨어난다. 난데없이 초인의 반대편에 서게 된 하층민 규남은 초인의 자존심과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다. 초인은 자신의 힘에 저항하는 규남을 제압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그럴수록 더 맹목적으로 규남은 초인을 쫓는다.

그런데 이 싸움은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다. 선취해야 할 목적이 없다. 초인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며, 규남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둘이 붙어 있으면 오히려 주변에 죽음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의 하찮은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싸우는가. 신선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그걸 영화가 잘 살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부분을 둘의 대결에 할애하면서도 영화가 그 부분을 비워둔 건 의도가 아닌, 두드러진 서사적 결함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규남과 초인이 맞이하게 되는 최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의 싸움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주변인들을 어떤 식으로 죽음에 몰아넣는지에 마음이 쓰인다. 규남은 구한 사람보다 죽인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실패한 영웅이다. 공권력은 늘 그렇듯, 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영화가 초인에게 부여한 능력, 사회질서를 진공상태로 만드는 힘은 일면 그런 법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롱이 법과의 싸움이 아니라, 법의 제거로, 초인의 무법한 세상으로 현상한다는 점은 그저 장르적 선택으로, 무심히 지나치기 어렵다. 왜냐하면 초인과 규남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외국인 노동자 알과 버바가 (혹은 그들이 환기하는 현실이) 위의 싸움에 개입되기 때문이다. 규남의 유일한 친구이자, 규남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둘은 한국어 구사가 능숙하며, 그들 사이에는 계급적 동질감이 있다. 상투적으로 말해, 그들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불편하지 않은 타자로 그려진다. 말하자면 영화는 그들을 얼마나 더 포용할 수 있는 타자로 형상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그들의 현실적 조건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는다. 살아 있을 때도 법의 테두리 밖에 존재했을 두 외국인의 억울한 죽음이 그 어떤 법 안으로도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법을 마음대로 헝클어뜨리는, 분노하는 타자.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죽어가는 타자. <초능력자>는 어쩌면 타자성(초인, 하층민 규남, 외국인 노동자)의 경합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타자성에 대해 더 마음을 주어야 하는가. 영화는 선택했다. 당신의 선택은?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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