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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리송한 이 집의 비밀 수상한 그 남자의 꿍꿍이

등록 2010-11-22 09:13

‘이층의 악당’
‘이층의 악당’
‘이층의 악당’
치밀한 코믹 로맨스·서스펜스물…꽉찬 대사에 김혜수·한석규 열연
보물 찾으려 세 들어온 사기꾼이 주인 모녀와 얽히며 빚는 이야기

<이층의 악당>은 전개가 무척 빠르다. 아니, 빨라 보인다. 로맨스에 코미디를 섞고, 서스펜스에 액션을 곁들여 이야기를 끌어가자니 별수 없다. 대사 한마디 놓치면 웃을 타이밍뿐 아니라 이야기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만큼 치밀하다.

이야기는 모녀(연주, 성아) 단둘이 사는 이층집에 한 남자(창인)가 세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커다란 집에 왜 모녀만 살까. 그럴듯한 집에 사는데 왜 세를 놓을까. 남자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집주인 연주는 김혜수, 꿍꿍이 남자는 한석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이야기가 풀려나올 법한 구조에다 유명 짜한 배역이 드러나면, 관객은 흠~ 하고 자리를 고쳐 앉는다. 그런데, 웬걸. 옆집주인이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민다.

옆집주인 : 누가 세 들어왔나봐? 남자가 보이던데.

연주 : 예~ 이층에 세놨어요.

옆집주인 : 여자 둘이 사는 집에 남자가 들어왔네.

연주 : 흠, 소설가세요. 글 쓰는 소설가요.


옆집주인 :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소설가 남자가 들어왔네.

말하는 품을 보니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오지랖 넓은 아줌마다. 근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아! 조역 단골 이용녀다. 그 정도면 이야기 전개에도 좀 기여할 법하다.

창인 : 뭘 훔쳐봤어요?

옆집주인 : 아니 훔쳐보다니~?

창인 : 아 계속 훔쳐보고 있었잖아요, 뭘 보셨어 할머니!

옆집주인 : 누구보고 할머니래, 내가 할머니? 아니 내가 어딜 봐서 내가 할머니야?

창인 : 아니 지금 연세가 아줌마는 아니잖아요, 뭘 훔쳐보셨냐고 할머니!

옆집주인 : 아… 훔쳐보는 게 뭐가 중요해. 아니 내가, 내가 어딜 봐서 할머니야? 봐, 봐! 날 보라구.

창인 : 아이~ 이웃끼리 조심합시다 앞으로 씨발.

옆집주인 : 니가 조심해 임마, 어? 내가 어딜 봐서 할머니야, 내가?

‘이층의 악당’
‘이층의 악당’

그러면 그렇지. 소일거리 없는 노파가 옆집을 감시하다가 집주인 연주가 기거하는 아래층을 기웃거리는 창인을 보게 된다. 꿍꿍이가 들켰을까, 창인이 찾아가 따지면서 시비가 벌어진다. 오고가는 말 틈에 웃음기가 은근하게 배어 있다가 대화 끄트머리에서 탁 하고 터진다. 새 영화 <이층의 악당>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대체로 그러하다.

연주 : 나는 그때 겨우 열아홉살이었는데, 그때 쟤만 안 낳았어도.

창인 : 아 연주씨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연주 : 그 시아버지 개새끼 진짜, 나도 되고 싶은 게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구요.

창인 : 그러니까 성아한테 그럴수록 집중하세요. 성아를 학교에 보내.

연주 : 나는 걔 요만할 때 시에프 찍고 티브이 나오고 그럴 때, 아주 내가 만사 팽개치고 얼마나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는데, 나는 아주 걔가 대단한 스타가 될 줄 알았어요. 어릴 땐 나 닮아서 예뻤거든요.

창인 : 아니요 지금도 이뻐요. 수업만 빼먹지 않으면.

연주 : 예쁘죠, 저 정도면 예쁘죠. 쟤는 성격이 안 이뻐요. 하긴 아주 어쩔 때 언뜻언뜻 지 아빠 얼굴 나올 때면 아주 그냥 내가, 허~ 사업한답시구 헛바람만 잔뜩 들어가지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쏟아붓더니, 그거 가게 하나 딸랑 남기고, 나보고 어쩌라구.

창인 : 아 연주씨 진정하세요. 성아한테만 집중하세요.

연주 : 그때 내 말대로 아파트를 샀어야 해요. 마당 있는 집~ 마당 있는 집, 그 마당 있는 집 타령할 때 내가 말렸어야 되는데. 응? 그때 아파트를 샀었어야 했어요 아파트를.

몇 합 되지 않는 수작에 연주의 내력과 성격이 다 담겼다. 그리고 대화 끄트머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웃기는 포인트를 팍팍 찍는 공식은 반복된다. 그렇다고 평평한 웃음이면 재미가 없다. 옆집주인-창인 대화는 ‘할망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할머니’의 악다구니, 연주-창인 대화에는 아파트를 거주공간이 아닌 재산증식 수단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녹아 있다. “아하! 그 정도 사정은 나도 알고 있지.”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남들 웃을 때 웃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참고로 창인은 골동품 사기꾼이고, 이층집에 숨겨진 20억대 ‘청화용문다기’를 찾으러 세를 들어왔다. 당연히 모녀를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연주는 사기꾼 화술에 빨려들고, 학교에서 왕따인 딸 성아는 수시로 땡땡이쳐 집으로 돌아온다. 창인이 본의 아니게 남의 집안 일에 참견하게 되는 전말이다. 한국 영화도 이만큼 숙성된 코미디 드라마를 얻었다. 자축할 일이다. 25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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