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스티발’
허지웅의 극장뎐/
<페스티발>은 이해영이 끝내 만들지 못했던 <29년>의 살풀이처럼 보인다. 이야기에 닮은 점은 없다. 배우도 류승범을 제외하면 김아중과 한상진이 살짝 얼굴을 비추고 말 뿐 <29년>과 크게 겹치지 않는다. 다만 <29년>을 주저앉게 만들었던 한국 사회 전반의 비뚤어진 경직성과 조바심이 여기 보인다. <페스티발>은 그와 같은 큰 틀의 화두를 성적 취향의 문제로 환원하여 흥겹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 제발 즐겁게 살자고 말한다. 즐겁게 살자는 말이 지나간 자리에, 타인의 즐거움을 좀 내버려두라는 말이 더 크고 또렷하게 울려퍼지고 있음을 눈치채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장배(신하균)는 평균의 한국 남자다. 경찰관인 그는 얼마 전 승진에 실패한 이후 온갖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중이다. 그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위 사람에게 위악을 드러내며 강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일뿐이다. 그 위악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는 건 동거중인 애인 지수(엄지원)다. 어느 날 지수가 자위 기구를 산 것을 본 장배는 폭발하고 만다.
한편 한복집을 경영하는 순심(심혜진)은 고운 한복 안에 모든 욕망을 감추고 딸 자혜(백진희)를 기르며 조용히 살아왔다. 우연히 순심은 철물점 주인 기봉(성동일)의 피학 성욕 취향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도 가학적인 성향이 있음을 깨닫는다. 고등학생인 자혜는 오뎅을 파는 상두(류승범)와 사귀고 싶어 한다. 빚을 갚기 위해 결국 원조교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전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자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상두는 자혜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상두에게는 비밀이 있다. 자혜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 광록(오달수)에게도 비밀이 있다. 영화는 이 은밀한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다음 한발을 내딛는 꿈같은 광경으로 즐겁고 흥겹게 ‘행진’한다.
이해영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페스티발>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산만한 영화로 보일 수 있다. 특히 전반의 완급을 다스리는 힘이 아쉬운데, 이는 대부분 신하균이 연기하는 장배 캐릭터로부터 빚어진다. 그러나 이 캐릭터가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을 망각한 상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 사실 장배 캐릭터의 위악은 다른 ‘변태’ 캐릭터들과의 호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타인을 변태라고 꾸짖는 평균의 한국 남성 장배야말로 그의 본연을 들여다볼 때 이 영화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변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질적인 변태 장배와, 일반적인 의미의 변태 순심, 기봉, 광록 등이 스스로를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결말을 유도한다. 이 변화를 담은 광경들은 <천하장사 마돈나>의 후반부를 보듯 여러가지 의미에서 충만하고 뿌듯하다. 특히 꼿꼿함과 일그러짐이 공존하는 심혜진의 아름다움은 이 영화에 치명적인 자취를 남긴다. 그러나 다른 캐릭터들의 갈등이 해소되는 호흡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상두-자혜 커플과 장배-지수 커플의 화해가 모두 함께 해피 엔딩으로 뭉뚱그려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페스티발>은 어찌됐든 즐겁게 살자고 이야기하는 영화다. 타인의 즐거움을 단지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단죄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와 그들 가운데 누가 진짜 변태냐고 반문한다. 정말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정체를 부끄러움 없이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고 외친다. 이 시끄럽고 과장된 천연색의 커밍아웃 이야기는, 그 순진함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근사한 영화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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