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기씨
16일 개봉 ‘브라보 재즈 라이프’
1세대 클라리넷 주자 이동기씨
1세대 클라리넷 주자 이동기씨
“젊은이가 영화 찍겠다고 하니 될까 싶었어. 돈도 안 될 테고, 그동안 몇 차례 엎어진 적이 있었거든.”
29일 <브라보 재즈 라이프> 시사회에서 만난 1세대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 이동기(74·사진)씨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젊은 음악평론가 남무성(42)씨가 몇 명 남지 않은 재즈 1세대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세미 다큐멘터리. 카메라는 후배들이 이동기씨를 비롯해 신관웅(피아노), 이판근(이론), 박성연, 김준(이상 보컬), 김수열(색소폰), 류복성(퍼커션), 강대관, 최선배(이상 트럼펫), 조상국(드럼) 등 재즈 1세대한테 바치는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한국 재즈사를 버무렸다. 8월 제천음악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이 ‘한국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오늘 16일 개봉한다.
“내가 재즈를 안 했으면 어떡할 뻔했나 싶어. 요즘도 하루 두 시간 연습을 하는데. 그때가 제일 행복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웃음이 소년 같은 이씨의 별명은 피노키오. 지금도 그 별명이 거론되면 농 삼아 “내가 언제 사람이 되나, 음악을 잘할 때 사람이 되는구나” 하고 되받는다. 그는 요즘도 동료들 몇몇과 함께 목요일마다 홍대 앞 재즈카페 ‘문글로’에서 연주를 하는 현역. 색소폰 연주자로 출발해 미8군 활동을 거쳐 조선호텔 소속 악단장을 지냈으며 17명으로 된 이동기 악단을 이끌던 1970~80년대가 전성기였다. 대중가요 작곡가로 활동하며 ‘그 사람 바보야’ 등 많은 히트곡을 냈다. ‘내 이름은 소녀’를 부른 조애희씨가 그의 아내다.
“한달에 한번 신촌시장 앞 15평 연습장에 모여 연주를 했어. 80년대 전두환 정권때인데, 밖에서는 데모를 해 깨진 창으로 최루가스가 들어오는데도 아랑곳없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연습을 했어.”
그는 미군이 아닌 한국의 대중을 상대로 한 재즈공연의 단초가 된 ‘야누스 재즈모임’ 초창기 모습을 들려주면서 영화에 그런 모습이 빠져 무척 아쉽다고 했다. “마누라가 엄청 속 터져 했지. 아들 둘이 음악에 소질이 있었는데 모두 다른 일을 해. 나팔 불어서 밥 먹겠느냐고 제 어미가 반대하더라구. 나는 시켰으면 했는데, 발언권이 없어. 나 혼자 한 것만도 고맙지, 뭐.”
그냥 음악이 좋아서 ‘딴따라’가 된 이씨는 재즈가 뭔지 전혀 모르던 시기에 미8군에서 흘러나온 판을 구해 악보로 옮기면서 한국 재즈의 주춧돌을 놓았다. 그 주추 위에 후배들이 하나둘 기둥을 올려 지금은 재즈과를 둔 대학이 꽤 되고 거기에선 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는 사이 재즈 1세대는 늙어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몇 사람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이게 소리그림이라 백날 연습해도 남이 들으면 똑같은 거라. 나한테는 날아오르려는 날갯짓인데. 그만둘 수가 없는 거라. 못 하는 날이 죽는 날이지.”
그는 클라리넷을 불 때 숨이 짧아졌다면서 마흔 넘어 배웠다는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했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그는 클라리넷을 불 때 숨이 짧아졌다면서 마흔 넘어 배웠다는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했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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