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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탈북자, 환대와 적대의 사이에서

등록 2010-12-06 09:21

두만강
두만강
[남다은의 환등상자] 두만강

우리의 이웃에 대한 포용과 환대, 그리고 혐오와 적대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있을까. 내가 기꺼이 당신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내가 언제라도 당신을 버릴 수 있다는 말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을까. 내 안위에 따라 타자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우리의 간사함, 우리의 시대를 부끄러워하는 것만이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최선의 태도일까. 2010년 비극적인 남한의 겨울을 살아가며 장률의 깊은 근심의 영화, <두만강>에 대해 생각한다.

하얀 눈이 뒤덮인 한겨울 두만강 어귀. 강 양편으로 북조선과 중국 조선족들의 마을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배고픈 북조선의 주민들이 강을 건너 조선족 마을에 들어선다. 이들 탈북자 중에는 부모 없이 탈출한 어린 소년, 소녀들도 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평화롭게 삶을 꾸려가는 조선족 마을 주민들에게 탈북자들은 침입자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공유해야 할 이웃이다. 그들은 결코 요란하게 떠벌리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탈북자들에게 그들의 몫을 나눠준다. 조선족 창호는 남한에 돈 벌러 떠난 엄마를 기다리며 할아버지, 누나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창호는 마을의 폐가에 아픈 여동생을 데리고 굶주린 채 숨어 있던 탈북 소년 정진과 마주친다. 창호는 정진이 마을 축구시합에 출전하는 조건을 걸고 먹을 것을 주기로 한다. 영화는 둘의 관계에 동정심이나 비굴함이 아니라 우정의 가능성을 심어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탈북자들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그들에 대한 조선족들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한다. 창호도 정진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정진만은 상대의 폭력적인 변화에 상관없이 꼿꼿한 태도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제 마지막 결단을 앞두고 있다.

장률의 영화에는 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 때가 대부분이었으며, 새로 도달한 땅은 또다른 고향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망종>에서 고향 갈 날을 기다리는 조선족 모자의 비극적인 결말로 우리를 절망하게 했다. <경계>에서는 몽골로 건너온 탈북자 모자의 힘겨운 시작을 통해 더 이상 그 무엇도 불가능해 보이는 체념의 자리에서 다시 가능성의 질문을 던졌다. 이제 <두만강>에서 장률은 기어이 조선족과 탈북자를 만나게 한다. 거기서 타자에 대한 환대는 한순간 적대로 이행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그런 두 태도 사이에, 단 두 개의 표면적인 태도로는 규정될 수 없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버티는 어떤 지점이 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되는, 그러나 그 어떤 수사로도 쉽게 형상화하거나 말해질 수 없는 마음. 창호의, 아니, <두만강>의 결단. 장률은 그걸 끌어안아야 한다고 믿는다. 남한의 겨울은 더 추워질 것이다. 언제쯤 개봉할지 모를 <두만강>은 12월10일과 14일, 서울 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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