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헬로우 고스트’
김영탁 감독의 ‘헬로우 고스트’
되는 일 없는 남자에게 붙은 골초·변태·눈물·식탐 귀신 넷
어설픈 장면·철 지난 향수에 방심했다가는 뒤통수 ‘철썩’ 냄새는 추억을 부른다. 오감 중 가장 원시적인 감각인 후각은 쉽게 피로해지지만 무뎌지기 전의 자극은 은화의 반짝임처럼 강렬해 무의식 아래 아득하게 침잠한 망각을 끄잡아올리기도 한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주인공이 김밥을 먹다가 김밥 속 미나리향에서 문득 과거를 기억해내는 것이 그럴듯함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상만(차태현)은 되는 일이 없다. 어려서부터 고아인 그가 비빌 언덕이 없는 터, 직장도 연애도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래서 이상한 알약도 먹고, 강에 뛰어들어도 보았지만 번번이 살아난다. 여느 때처럼 병원에서 깨어난 그한테 느닷없이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게 골초 귀신(고창석). 더부룩한 털이 난 그 귀신은 줄담배를 피우고 발가락 냄새가 많이 나고 홍콩할매와 구미호를 무서워한다. 다음으로 붙은 귀신이 변태 할배(이문수). 여자의 엉덩이를 소엉덩이처럼 바라보는 할배는 술을 달고 산다. 의사의 캐비닛에서 발견된 눈물 귀신(장영남)은 종일 징징 울기만 하고 식신 초딩(천보근)은 단거나 자장면이면 환장한다. 생면부지의 이 귀신들은 상만한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한꺼번에 네 귀신이 어깨를 짓누르는 통에 상만의 추레한 입성은 더 찌그러들고, 이들이 번갈아 그의 몸을 빌리는 바람에 상만의 행동거지는 흡사 정신이상자다. 뻑뻑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눈꼴시고, 젊은 처자한테 날리는 웃음은 몰염치하고, 펑펑 울어대는 울음은 뜬금없고, 자장면을 먹어도 아귀아귀 입가에 자장칠갑이다. 소원을 들어주면 이들이 떨어진다는 무당의 말에 귀신들 개별 면담을 거쳐 이들이 원하는 바를 대신 풀어주기로 한다. 소원이란 것들이 이상야릇하다. 그 이하는 상만이 귀신 한명씩 돌아가며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들 귀신이 묻는 질문에만 대답을 하지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설정은 냄새가 기억을 환기하는 것과 짝을 이룬다. 외부의 자극 없이 기억은 스스로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이 없으면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떠올려도 어머니는 이미 죽고, 그 누군가는 기억의 문을 완강히 닫고 있으면 하릴없는 노릇이다.
귀신과의 대화 장면은 두 가지. 상만과 관객을 위한 ‘귀신이 눈에 보인다 치고’와 영화 속 정상인을 위한 ‘안 보이는 귀신을 어쩌라고’. 정상인을 위한 상만-귀신의 티격태격 대화는 필시 또다른 자아와의 대화이다. 독백을 거듭하면서 상만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기억의 늪으로 빠져든다. 무의식에서 떠올린 기억은 앙상한 나무 줄기거나 쓰잘 데 없는 것을 덧댄 허풍선이거나다. 영화 속 골초, 변태, 눈물, 식탐에는 허풍으로 부풀어진 뒤에 졸아든 나뭇가지 형상이 보인다.
기억으로 돌아가기는 어릴 적 미역 감던 개울로 들어서기와 흡사하다. 깊고 퍼렇던 그 물이 종아리에도 미치지 않는 것. 영화 속 골초 귀신의 2 대 8 가르마, 변태 할배의 꽃무늬 셔츠·백구두, 눈물 아줌마의 긴 생머리, 식신 초딩이 보이스카우트처럼 목에 두른 스카프 등이 모두 철 이르거나 철 지난 뒤끝처럼 생뚱하게 보인다. 영화를 관통하는 ‘시골스럽거나 철없는’ 장면은 기억의 속성과 일치한다. 김밥을 먹다가 점점 일그러지는 상만의 표정이나 갑자기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이나 옛 명절 주막거리 포장 영화에서 본 장면들과 흡사하다. 부러 성의없이 만든 장면들이 빚어내는 일곱빛깔 향수.
캐스팅이나 배우들의 연기나, 그들의 입성이나 모두가 어설프기 이를 데 없는 초반. “영화가 왜 이래?” 하는 생각은 갈수록 힘을 얻어 방심하게 되는데, 그 무렵에 바로 영화가 호된 매를 든다. “어설픈 건 바로 너”라고. 김영탁 감독한테 졌다. 22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어설픈 장면·철 지난 향수에 방심했다가는 뒤통수 ‘철썩’ 냄새는 추억을 부른다. 오감 중 가장 원시적인 감각인 후각은 쉽게 피로해지지만 무뎌지기 전의 자극은 은화의 반짝임처럼 강렬해 무의식 아래 아득하게 침잠한 망각을 끄잡아올리기도 한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주인공이 김밥을 먹다가 김밥 속 미나리향에서 문득 과거를 기억해내는 것이 그럴듯함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상만(차태현)은 되는 일이 없다. 어려서부터 고아인 그가 비빌 언덕이 없는 터, 직장도 연애도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래서 이상한 알약도 먹고, 강에 뛰어들어도 보았지만 번번이 살아난다. 여느 때처럼 병원에서 깨어난 그한테 느닷없이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게 골초 귀신(고창석). 더부룩한 털이 난 그 귀신은 줄담배를 피우고 발가락 냄새가 많이 나고 홍콩할매와 구미호를 무서워한다. 다음으로 붙은 귀신이 변태 할배(이문수). 여자의 엉덩이를 소엉덩이처럼 바라보는 할배는 술을 달고 산다. 의사의 캐비닛에서 발견된 눈물 귀신(장영남)은 종일 징징 울기만 하고 식신 초딩(천보근)은 단거나 자장면이면 환장한다. 생면부지의 이 귀신들은 상만한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한꺼번에 네 귀신이 어깨를 짓누르는 통에 상만의 추레한 입성은 더 찌그러들고, 이들이 번갈아 그의 몸을 빌리는 바람에 상만의 행동거지는 흡사 정신이상자다. 뻑뻑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눈꼴시고, 젊은 처자한테 날리는 웃음은 몰염치하고, 펑펑 울어대는 울음은 뜬금없고, 자장면을 먹어도 아귀아귀 입가에 자장칠갑이다. 소원을 들어주면 이들이 떨어진다는 무당의 말에 귀신들 개별 면담을 거쳐 이들이 원하는 바를 대신 풀어주기로 한다. 소원이란 것들이 이상야릇하다. 그 이하는 상만이 귀신 한명씩 돌아가며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들 귀신이 묻는 질문에만 대답을 하지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설정은 냄새가 기억을 환기하는 것과 짝을 이룬다. 외부의 자극 없이 기억은 스스로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이 없으면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떠올려도 어머니는 이미 죽고, 그 누군가는 기억의 문을 완강히 닫고 있으면 하릴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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