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남다은의 환등상자] 불청객
올해의 마지막 환등상자이니만큼, 연말 기분도 낼 겸,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얼마 전, 평론가들과의 술자리에서 올해 개봉작들에 대한 이러저런 평을 나누던 중, <불청객>에 대한 애정 어린 고백들을 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내렸고, 나는 그때까지도 아직 보지 못했던 터였다. 어떤 영화들은 비평의 칼을 들이대기 전에,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아가서 악평으로부터 무조건 방어하고 싶게 하는데, 이 영화가 그런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불청객>에 대해 말할 때, 여기에는 분석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뭔가 싱싱하고 본능적인 반응 같은 것이 있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와 뒤늦게나마 <불청객>을 찾아보았다(합법 다운로드로 볼 수 있다). 소문대로 황당하게 웃겼고, 예상치 못한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초저예산 에스에프(SF) 영화로 소개되어온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책상과 지저분한 이부자리, 그리고 빈 페트병들이 뒤섞인 낡은 자취방에 세 남자가 살고 있다. 말이 고시생, 취업준비생이지, 실은 기생충처럼 시간을 죽이는 백수들처럼 보인다. 그런 그들 앞에 어느 날 난데없이 택배상자가 배달되고, 그 상자를 열자마자 마치 해녀복을 입은 것처럼 온몸이 까만 외계인이 나타난다. 외계인의 이름은 포인트 맨, 그는 은하계 론리스타 은행의 세일즈맨이다. 그는 지구의 나이든 부자들의 수명을 연장해주기 위해 백수들의 생명을 빼앗아가서 적립해주는 일을 하는 악당이다. 세 남자가 이 요구에 저항하자, 포인트 맨은 이들의 낡은 자취방을 우주로 보내버린다. 자취방이 우주를 둥둥 떠다니게 되고, 백수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갖은 묘안을 짜내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 거대한 내용을 초저예산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거의 웃음거리로 만들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청객>은 영화에서 자본의 결핍과 상상력의 집요한 용기가 부딪쳤을 때,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흥미로운 예를 만들어냈다. 물론 이 영화에도 공들인 컴퓨터그래픽(CG)이 있지만, 시지의 완성도보다는 그것을 이야기와 붙게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에 이 영화의 빛이 있다.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잉여인간들과 전우주적인 착취구조를 연결하는 이야기의 뼈대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성은 영화의 일부일 뿐,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그 자리에 있을 법하지 않은 사물들, 대사들, 인물의 행동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요상한 리듬으로 조응하며 끝내 나아갈 때, <불청객>은 화려한 시지 없이도 우주에 대한 우리의 오랜 환상과 향수를 자극한다. 감독 이응일은 자신의 자취방에서 영화를 만들었으며, 주인공 백수뿐만 아니라 외계인 역도 도맡았다. 기술력이 아니라, 기이하게 촌스럽고 다정하며 애틋한 상상력의 정서 때문에 <불청객>을 올해의 새로운 영화 목록에 수줍게 올리고 싶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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