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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돈만 없는 쿠바…돈만 있는 한국

등록 2011-01-03 08:53

쿠바의 연인
쿠바의 연인
남다은의 환등상자 <쿠바의 연인>

쿠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자라난 음악과 춤의 땅.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의 나라. 그리고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감독 마이클 무어와 미국인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평등한 의료제도의 국가. 뜨거운 역사와 정열적인 예술의 땅으로, 무엇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여전히 ‘혁명’, ‘평등한 분배’라는 단어가 가능한 나라로 믿고 싶은 곳. 엄격한 사회주의가 자유로운 살사를 추는 국가라는 이상한 환상을 꿈꾸게 하는 곳. 그러니까 우리는 21세기 쿠바의 현실이 아니라 ‘쿠바’라는 상징성에 매혹된다. 아마도 정호현 감독 역시 그런 환상을 가득 품고서 쿠바에 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 감독에게 첫 번째 행운이 다가온다. 우연히 피델 카스트로가 연설을 위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찍게 된 것. 북적이는 사람들의 환호를 지나 건물 위에 펼쳐진 체 게바라의 얼굴이 비춰지고, 카스트로의 연설이 들린다. 이것은 쿠바식 사회주의에 대한 다큐멘터리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 느닷없이 카메라의 방향이 돌아간 곳에는 레게 머리를 한 젊은 쿠바 남자가 카메라를(아니, 아마도 감독을) 쳐다보며 씩 웃고 있다. 그때, 감독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막을 띄우는데, 이런 식이다. “카스트로 대령의 연설은 새벽까지 계속됐고 나는 이 ‘숫댕이’ 총각을 따라갔다.” 그날 그녀에게 다가온 두 번째 행운. 그의 이름은 오리엘비스. 말하자면 <쿠바의 연인>은 정호현 감독이 쿠바에서 만난 어여쁜 쿠바 남자와의 사랑을 통과해서 쿠바의 문화와 현실, 나아가 그와 대비되는 한국의 풍경을 보여주는 경쾌한 영화다. 절반은 정호현이 바라본 쿠바의 현실, 나머지 절반은 오리엘비스를 통해 바라본 한국의 현실이다. 그때 쿠바의 현실은 우리의 환상과 많이 다르고, 한국의 풍경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나쁘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지면 좋지만, 우린 모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이틀을 노동해야 칫솔 하나를 살 수 있는 쿠바의 부실한 사회 시스템과 궁핍함은 혁명의 아들, 딸들을 지치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영화가 쿠바식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면서도, 여전히 ‘쿠바’의 활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활력은 전적으로 감독이 만난 쿠바의 평범한 시민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춤과 노래로 무장한 낙천성이 있고, 혁명의 뿌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그걸 거리를 두고 분석할 수 있는 힘, 역사와 문화와 삶에서 체득된 지적인 힘이 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연인들을 통해 본 한국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오늘을 즐기는 시인들의 나라 쿠바에는 다른 모든 것이 있는데 돈이 없다. 그리고 내세의 구원을 갈구하는 교인들의 나라 한국에는 돈은 있는데 다른 그 무엇도 없다. 어쨌든 정호현과 오리엘비스는 예쁘게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그 속편이 보고 싶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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