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준지 감독
‘회고전’ 참석차 방한 ‘케이티’ 사카모토 준지 감독
“일반인이 경험하기 힘든 것을 소재로 하여 관람 자체가 사건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니 거리 뒤편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초점을 두게 되지요.”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룬 <케이티>, 타이의 아동매춘을 소재로 한 <어둠의 아이들> 등 문제적인 작품으로 한국 영화팬들한테 친숙한 사카모토 준지(52·사진) 감독이 최근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최한 자신의 회고전에 참석하러 한국에 왔다. 오사카 태생의 사카모토 감독은 이시이 소고 감독의 <폭렬도시>의 미술 조수로 영화판에 뛰어들었으며 데뷔작 <팔꿈치로 치기>(1989)로 각종 영화제의 신인 감독상을 휩쓸었다. 주요 작품으로 <토카레프>, <얼굴>, <케이티>, <클럽 진주군>, <망국의 이지스>, <다마모에>, <카멜레온> 등이 있다. “<케이티>를 예로 들면, 당시 한·일 월드컵 대회로 양국간 화해 무드가 무르익었던 시기에 만든 건데요. 역사를 모르는 일본 젊은이한테 예전에 있었던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피상적 화해가 아닌 근본적인 문제를 환기하고자 했지요.”
아시아적인 문제를 소재로 즐겨 삼는 것은 <클럽 진주군>처럼 일본적인 소재, <얼굴>처럼 개인적인 얘기를 거쳐 주변의 사회문제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간 측면이 있지만 오사카에서 나고 자라면서 재일동포 친구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일 거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액션, 러브신 등 자극적인 요소 없이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폭력, 음모 등 그가 다루는 소재는 주로 거친 남성의 영역이지만 영상구현 방식은 무척 섬세하고 여성적이다. 그는 뜻밖에도 몇 편 되지 않지만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 훨씬 만들기 쉬웠다고 했다.
“남성이 주인공일 때는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어떨까에 집착하게 되지만 여성이 주인공이면 내가 여성이 될 수 없으니 더 자유로워지더군요.” 원래 매이는 게 싫고,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서 독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는 로맨스영화는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웃었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의식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흥행과 메시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간단치 않더라고요.” 그는 <케이티>, <어둠의 아이들>은 누가 볼까 싶었는데 의외로 일본 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아이돌 스타가 등장해 잘될 것 같았던 <자토이치 더 라스트> 같은 영화는 오히려 히트가 안 됐다고 털어놨다.
영화는 관객이 완성한다는 지론을 가진 그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상영되느냐에 따라 영화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며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흥미롭다고 했다. 함께 일하고 싶은 한국 배우로 안성기, 송강호, 최민식, 유지태 등을 꼽았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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