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단편 ‘파란만장’ 27일 극장개봉
새 영화 <파란만장>은 박찬욱-찬경 형제 감독의 첫 공동작품이다. 한 남자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판타지로 30분 분량의 단편이다.
제작비 1억5천만원과 오광록, 이정현 등 관록 있는 배우를 당겨온 데는 박찬욱 감독의 경륜이,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오구굿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에서는 박찬경 감독의 패기가 느껴진다. 애초 연출-박찬욱, 비주얼-박찬경으로 역할분담을 했지만 실제 촬영에 들어가니 구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찬욱씨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로 이름난 영화감독. 찬경씨는 <신도안>(2007),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0)로 감독 명함에 잉크 냄새 풋풋하지만 원래는 냉전·분단과 무속을 소재로 한 사진, 비디오, 설치작품을 주로 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프로(형)와 아마추어(동생)의 이음새는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절묘한 경계선은 바로 가수 출신의 배우 이정현. 고깔모자에 흰 베를 가르며 읊조리는 그의 소리는 깊은 뱃속에서 나오는 숭늉 맛에는 못 미치나 가요가수의 현대식 발음으로 닳아서 경계가 흐릿한 황해도 무녀의 구음을 또렷하게 재현한 점은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다. 하지만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갓 온 듯 청초한 이미지는 되레 비현실적으로 작용한다. 상업성-예술성의 이음매는 남자 배우 오광록이 치마저고리로 갈아입고, 이정현의 얼굴이 여인에서 아이로 바뀌면서 소멸된다. 판타지 세상에서 상업과 예술의 경계 가르기는 한낱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격하되고 만다.
영화의 미덕은 경계선에 있다. 그 신선함이란 무속의 빙의와 박래품 판타지의 맞닥뜨림에서 온다. 남자 낚시꾼과 그의 낚싯바늘에 걸려서 물속에서 끌려나온 소복 차림의 여자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장면에서 동과 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컬러와 흑백이 강렬하게 충돌하면서 영화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오로지 박씨 형제만이 할 수 있는 드라마. 그 이후의 이야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후일담처럼 밋밋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번 영화는 케이티가 제작비를 대 100% 아이폰4로 찍었다. 기동성 외에 야간에 촬영한 거친 입자의 흑백 장면으로 저승세계의 낯선 모습을 표현한 것이 도드라진다. 찬경씨는 “카메라가 가볍고 작은 탓에 여러 대로 다양한 각도에서 찍을 수 있었다”고 했고 찬욱씨는 제작부에서 로케장소를 스케치해온 것을 편집해 넣기도 했다며 “카메라 권력이 분산됐다”고 했다.
<파란만장>은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27일 일반 극장에서 개봉한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