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스 본
남다은의 환등상자 / <윈터스 본>
“누군가 권하기 전에는 먼저 요구하는 게 아니야.” 그래봤자 십대 소녀인 리 돌리(제니퍼 로런스)가 어린 동생들을 타이른다. 옆집의 저녁메뉴가 고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남동생이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내비치지만, 누나는 냉정하다. 대신 그녀는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에 진짜 총을 쥐여주고 방아쇠를 당겨 표적을 맞히는 연습을 시킨다. 그런 다음, 숲 속으로 아이들을 데려가 다람쥐 잡는 시범을 보인다. 모처럼 마주한 고기반찬 앞에서 흥분하는 동생들에게 살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발라내는 법을 알려준다. 기겁하는 남동생의 손에 기어이 죽은 다람쥐를 안기며 단호하게 내뱉는 누나의 한 마디. “살다 보면 겁이 나도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는 법, 십대 소녀가 빛나는 청춘과 그리움, 위로, 사랑 따위의 감정을 통째로 포기한 대가로 습득한 세상의 거친 진실.
<윈터스 본>은 미국 미주리주 남부의 산골에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엄마와 어린 두 동생을 돌보며 세상과 싸워가는 열일곱살 소녀의 삶에 집요하게 밀착한 영화다. 소녀의 아버지는 마약사범으로 감옥에 들어갔다 집 담보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종적을 감췄다.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으면, 소녀의 가족들은 매서운 추위 속에 내쫓길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소녀에게 중요한 건, 그의 생사 여부가 아니라, 그걸 증명해 줄 아버지의 육신처럼 보인다.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어차피 다시 감옥에 가겠지만, 시체로 돌아온 아버지는 적어도 소녀와 가족을 살릴 것이다. 아버지라는 무기력한 이름이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 소녀가 세상에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 그러나 마약의 실타래로 얽힌 이 의뭉스럽고 불길한 마을의 어른들은 그저 아버지의 행방을 물을 뿐인 소녀를 마치 금기의 사과를 건드린 죄인처럼 다룬다. 남자들은 더없이 폭력적이고 그들과 함께 사는 여자들은 무력한데, 그들은 타락한 비밀의 한 배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스릴러 장르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여기에 풀어야 할 비밀이 있어서도, 숨겨진 범인이 있어서도 아니다. 소녀가 당면한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막다른 지점으로 내몰려가는 그녀를 어디선가 은밀히 지켜보는 호기심 어린, 위협적인 시선들, 그러나 결코 개입하지 않는 침묵하는 시선들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다. <윈터스 본>은 그런 시선의 무심한 폭력성의 위력이 한 소녀의 삶을 짓누르는 이야기이자, 세상이라는 암울한 스릴러에 맞서 단지 가족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존감을 지켜내려는 소녀의 분투기다. 이 소녀는 온몸에 피멍이 들지라도 단 한번도 울부짖거나 구걸하지 않는다. 다만 똑바로 쳐다본다. <윈터스 본>을 보며 우리의 마음이 송연해진다면, 그건 삶이 소녀에게 가하는 가혹함 때문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질긴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그 송연함에 종종 울컥하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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