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
다큐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
독일 현대무용 대모의 공연 여정
독일 현대무용 대모의 공연 여정
춤은 언어 이전의 미디어다. 언어를 초월한다는 표현이 더 적실하다. 동서, 남북, 고금을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춤에는 이미 춤의 하위 장르와 개별문화의 특성이 배어 있는 게 현실.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이것을 털어버려야 한다. 춤을 배워야 하는 당위는 거기서 나온다.
20일 개봉하는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를 보면 춤을 배우고 싶어진다. 장르의 이름으로 갈라진 현실 속 춤의 한계를 넘어 몸짓으로 환원된 춤 말이다.
피나 바우슈(1940~2009)는 <봄의 제전> <푸른 수염> <카페 뮐러> <카네이션>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독일 무용계의 대모이자 현대 무용 최고의 작가.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그는 기존의 권위와 관습을 깨고 예술(춤)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은 탄츠테아터라는 하이브리드. 탄츠(춤)와 테아터(연극)가 합쳐진 이것은 두 장르의 결합인 동시에 단일영역으로 독립된 장르로 정립됐다. 고전발레 혹은 현대무용에서 지향해온 전통적인 동작을 사용하기보다 일상생활에서의 동작들을 무대로 가져왔다. 그런 탓에 피나 바우슈의 작품에는 두려움, 절망, 사랑, 간절함, 외로움 등 인간의 삶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춤이라기보다 몸짓에 가까운 탄츠테아터는 또다른 미디어로 승화되어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영화는 탄츠테아터 가운데 하나인 <콘탁트호프>의 출연진 선발과 연습, 리허설, 그리고 공연에 이르기까지 10개월 동안의 여정을 촘촘하게 따라간 다큐멘터리. ‘매음굴’로 번역되는 콘탁트호프는 사람들이 접촉을 위해 만나는 장소를 말한다. 1978년 초연된 이래 수십 차례 공연된 이 작품은 낯선 남녀가 처음으로 만나 소통하면서 발생하는 다정함, 의심, 고통, 외로움 등 교차하는 만감을 몸짓으로 구현한다. 영화가 따라가는 2008년 버전의 특징은 초연이 65살 이상의 노인을 출연시킨 것과 달리 춤을 처음 접하는 14~17살 남녀를 참여시킨 점.
인격 형성기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정체를 잘 모를뿐더러 스스로를 표출하는 법에 미숙한 세대. 따라서 10개월 동안 피나 바우슈를 사사하면서 내면의 감정을 몸짓으로 표출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동시에 독립된 인격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가족 중 세르비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아이,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 아이, 여성차별이 심각한 이슬람교를 믿는 집시 집안의 아이 등. 저마다 고통스럽게 봉인된 기억의 빗장을 풀고 상처를 맞댐으로써 그들 사이에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마음에 빗장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영화는 유교전통에서 절제와 굴종이 몸에 밴 작금 한국 사회에 던지는 피나 바우슈의 사후 메시지다. “왜 그렇게들 사시나?”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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