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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깊고 섬세한 시선…사랑, 여성을 발견하다

등록 2011-01-17 09:10

‘아이 엠 러브’
‘아이 엠 러브’
루카 과다니노 감독의 ‘아이 엠 러브’
재벌가 며느리의 ‘자아찾기’…틸다 스윈턴 빛나는 연기
심경과 일치시킨 색채와 음악·감독의 세계관 고스란히

루카 과다니노. 그 이름을 기억할 일이다.

다섯번째 작품 <아이 엠 러브>에서 보여주는 이탈리아 루카 과다니노 감독의 인상은 ‘지독한 인간’이라는 것.

영화는 재벌가 며느리가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얼개를 가진 멜로드라마지만 거기에는 감독이 바라보는 사회관과 이를 구현하는 영화적 문법이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 있다. 잘 보이지 않지만 건드리면 금세 터질 듯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재벌 레키 집안의 며느리 엠마(틸다 스윈턴)는 아들 에도아르도(플라비오 파렌티)의 친구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가 만들어준 요리를 맛본다. 한점 한점 그의 맛솜씨에 빠진 엠마의 관심은 안토니오한테 쏠린다. 안토니오가 식당이 쉬는 날 산레모에서 채소를 기른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가고 둘은 뜨거운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몇 달. 출장에서 돌아온 아들 에도아르도는 엠마가 특별한 날 끓여주는 수프의 맛이 안토니오한테 옮겨간 것을 보고 둘 사이의 관계를 눈치챈다.

‘아이 엠 러브’
‘아이 엠 러브’

“남편은 예술품을 수집하러 러시아에 왔었어. 그 후 밀라노에 왔고 다신 돌아가지 못했지. 난 이탈리아인이 되는 법을 배웠어. 사실 엠마는 진짜 이름이 아니야. 그이가 지어준 거지. 진짜 이름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집에선 다들 키티쉬라 불렀던 기억이 나.” 피끓는 청년 안토니오와 그가 만든 러시아 샐러드는 ‘각성제’였다. 부자 남편이 러시아에서 취득한 ‘트로피’ 엠마에서 잊혀진 이름 키티쉬를 비로소 회복하게 된다.


재벌가 며느리 엠마에서 자연인 키티쉬로 변해가는 과정은 감독의 페티시즘적 시각으로 구현된다. 엠마의 정장 원피스는 진홍색에서 동자꽃색을 거쳐 상아색으로 옮겨갔다가 검은 상복으로 바뀌고 궁극에는 평상복 바지로 갈아입게 된다. 상아색 단계에서 카메라는 깊은 잠에 빠진 엠마한테서 왕방울 진주목걸이와 그가 안은 곰인형을 번갈아 비춰준다.

엠마의 ‘외출’은 그의 딸 엘리자베타와도 관련된다. 그는 유화에서 사진으로 전공을 바꾸듯이 남자 친구를 차버리고 동성 선생과 사랑에 빠진다. 엠마가 산레모에 가는 핑계도 딸의 사진전이다. 감독의 여성 및 성적 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언뜻 비친다.

‘아이 엠 러브’
‘아이 엠 러브’

카메라는 엠마가 머무는 밀라노, 산레모, 런던을 따라가며 침대에서의 위태로운 관계와 식탁에서의 천연덕스런 관계를 병치시키며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세 장소를 소제목으로 내세울 만큼 영화는 인물의 심경과 도시의 색채 변화를 표나게 일치시킨다. 재벌가 며느리 신분인 밀라노는 한겨울의 무채색이고, 안토니오의 연인으로 머무는 산레모는 화려한 봄여름이다. 밀라노에서 카메라는 장중한 부감이 자주 활용되고 산레모에서는 주로 키높이가 쓰이며 음악 역시 장중함과 경쾌함이 대비된다. 런던은 비즈니스인 만큼 중간쯤? 엠마와 안토니오가 마지막으로 함께 머무는 공간이 어두운 것은 불투명한 미래를 상징하는 듯하다.

감독의 세계관은 역시 스쳐가는 대화에 반어법으로 묻혀 있을 따름이다.

“전쟁은 개발을 이끌 수 있죠. 여기서 부가 생산되면 이쪽은 간접 파괴가 되죠. 자본은 민주주의죠.” 레키 가문은 금융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섬유업체를 매각하려 하는데 이를 위해 밀라노에 온 인도 출신 영국인이 하는 말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라”는 그의 말에는 돈이면 다 되고 돈을 위해 뭣이든 하게 된 세계화에 대한 감독의 냉소주의가 아니고 뭔가.

엠마의 섬세한 감정변화를 연기한 틸다 스윈턴의 연기가 도드라진다. 루카 과다니노 감독과는 세번째 작품. 1999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주인공들>에서 깊은 교감을 한 이들은 짝짜꿍이 되어 <틸다 스윈턴: 러브 스토리>라는 인터뷰로 이뤄진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그때 이후 7년에 걸쳐 함께 고민해온 결과가 이번 작품이다. 틸다 스윈턴은 공동제작자로 참여했다. 51살인데도 영화를 위해 화끈하게 벗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참고로 인물 간의 관계와 균열 한가운데 있는 러시안 수프는 ‘우하’. 여러 가지 생선을 함께 넣어 끓인 맑은국으로 사프란으로 독특한 향취를 낸다고 한다. 볼거리, 맛거리, 생각거리가 풍부한 만큼 상영시간 120분은 길지 않게 느껴진다. 2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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