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특유의 재치로 역사 대면
허구와 희망사항과 웃음 배합
사투리 과도하나 볼거리 풍성
허구와 희망사항과 웃음 배합
사투리 과도하나 볼거리 풍성
‘황산벌’ 이후 8년…속편 ‘평양성’
<평양성>은 이준익 감독 특유의 역사 비틀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8년 전 <황산벌>은 백제의 최후를 그렸고, 이번 차례는 고구려다.
통상 사극은 후대의 민족주의적 시각이 가미돼 거품이 끼게 마련.
이준익의 사극은 솔직함과 치기가 뒤섞인 술자리 뒷담화처럼 거품을 걷어내 아픈 역사를 대면하지만 허구와 희망사항과 웃음을 배합한 것이 꼭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맛이다. ‘역사는 역사고 한바탕 웃어보세’ 식의 결론도 술자리 뒤끝과 흡사하다.
영화가 대상으로 삼은 668년 평양성 전투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함으로써 고구려 700년 역사가 끝장난 마지막 전투. 당시 고구려는 70여년에 걸친 수·당·신라의 괴롭힘으로 국력이 고갈되고, 장기집권한 연개소문의 사망으로 독재 체제에 금이 간 상황.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신라에, 그의 장자 연남생은 당나라에 투항했다. 결국 668년 김인문의 27만 신라군, 이적·설인귀의 50만 당나라군의 합동공격으로 남건이 분전한 평양성은 무너지게 된다. 남건을 비롯한 지도부와 2만8000여호가 당나라로 끌려가고 평양에는 당나라 직할 안동도호부가 설치됐다.
이준익의 ‘평양성 전투’는 좀 다르다. 김유신(정진영)은 늙고 쇠약하여 풍까지 맞은 채 장수의 등에 업혀 참전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그는 백제 잔병들로 선봉대를 삼으며 문무왕이 이끄는 본대는 후방 한성에 머물게 하는 등 노회한 전략가로 등장한다. 국익을 위해서는 노망난 시늉에다 생떼는 물론 얄미운 짓도 불사한다. 땅 50마지기를 선심쓰며 특공대를 보내면서 “어차피 죽을 놈들”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한데 이들의 특별한 임무는 사서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이 감독의 사관과 김유신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남건은 고구려의 자존심을 대변하듯 미남 배우 류승룡이 맡아 삼족오 머리띠, 멋진 갑옷 차림에다 카리스마·유머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로 나온다. 또 역사의 기술과는 달리 장렬하게 전투 중 사망한다.
영화는 패자가 되어 역사에서 졸아든 고구려를 위해서는 다소의 ‘뻥’을, 승자로서 부풀리고 정당화된 신라를 위해서는 풍자와 유머를 가미한다. <평양성>의 평양성은 일종의 고구려에 대한 오마주. 1만5000평 너른 터에 세워진 것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위풍당당하다. 지금도 고고한 만주의 오녀산성과 흡사하다. 나당군이 지지리 못나고 추레한 데 비해 고구려군은 제대로 된 전투복에 정연한 대오를 갖췄다. 신라 쪽 유머는 김유신과 이문식의 몫. 황산벌 전투에서 살아남은 백제군 병사 ‘거시기’(이문식)가 다시 전장에 끌려와 짠한 웃음을 부른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당께”를 연신 외치는 그는 “즈그 우두머리들 땅따먹기 노름에 희생될 이유가 없다”는 지론이다. 그는 고구려 여자 병사 갑순(선우선)한테 반해 좌충우돌 돌진하는데, 완전 소모적인 전장에서 유일하게 생산적인 인물, 또다른 등장인물 ‘뭐시기’와 함께 지배계급의 정치놀음에 희생되는 민초를 대변한다. 이 감독 역시 감초를 자처한다. 고구려군 짐꾼으로 잠깐 등장해 한마디 친 대사가 어색 민망하니 배우 아닌 티가 역력하다. 김병만, 류담은 고구려군 지하땅굴 감시병으로 나온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사투리는 심각한 역사 드라마에 숨통을 틔워준다. 하지만 현대 지역사투리로 도배하다시피 해 역사 희화화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주며 때로는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는다. 볼거리는 많은 편. 돌덩이를 날리는 포차, 성벽을 기어오르는 사다리, 성문을 부수는 거대한 당차, 성벽 높이로 세워 올린 충차 등 신라군의 공성무기와 성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창 달린 널빤지 낭아박, 흔들흔들 성벽 아래를 공격하는 추뢰 등 고구려군의 방어장비가 대거 선보인다. 걸쭉한 가사와 귀에 익은 멜로디의 신라 병사들의 약올리기 합창, 꿀 주머니를 던져넣은 뒤 벌을 풀어놓는 식의 화생방 공격, 공중 폭발하면서 수십개의 화살이 내려꽂히는 신무기 등이 등장해 눈길을 잡는다. 27일 개봉. 12살 관람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영화는 패자가 되어 역사에서 졸아든 고구려를 위해서는 다소의 ‘뻥’을, 승자로서 부풀리고 정당화된 신라를 위해서는 풍자와 유머를 가미한다. <평양성>의 평양성은 일종의 고구려에 대한 오마주. 1만5000평 너른 터에 세워진 것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위풍당당하다. 지금도 고고한 만주의 오녀산성과 흡사하다. 나당군이 지지리 못나고 추레한 데 비해 고구려군은 제대로 된 전투복에 정연한 대오를 갖췄다. 신라 쪽 유머는 김유신과 이문식의 몫. 황산벌 전투에서 살아남은 백제군 병사 ‘거시기’(이문식)가 다시 전장에 끌려와 짠한 웃음을 부른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당께”를 연신 외치는 그는 “즈그 우두머리들 땅따먹기 노름에 희생될 이유가 없다”는 지론이다. 그는 고구려 여자 병사 갑순(선우선)한테 반해 좌충우돌 돌진하는데, 완전 소모적인 전장에서 유일하게 생산적인 인물, 또다른 등장인물 ‘뭐시기’와 함께 지배계급의 정치놀음에 희생되는 민초를 대변한다. 이 감독 역시 감초를 자처한다. 고구려군 짐꾼으로 잠깐 등장해 한마디 친 대사가 어색 민망하니 배우 아닌 티가 역력하다. 김병만, 류담은 고구려군 지하땅굴 감시병으로 나온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사투리는 심각한 역사 드라마에 숨통을 틔워준다. 하지만 현대 지역사투리로 도배하다시피 해 역사 희화화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주며 때로는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는다. 볼거리는 많은 편. 돌덩이를 날리는 포차, 성벽을 기어오르는 사다리, 성문을 부수는 거대한 당차, 성벽 높이로 세워 올린 충차 등 신라군의 공성무기와 성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창 달린 널빤지 낭아박, 흔들흔들 성벽 아래를 공격하는 추뢰 등 고구려군의 방어장비가 대거 선보인다. 걸쭉한 가사와 귀에 익은 멜로디의 신라 병사들의 약올리기 합창, 꿀 주머니를 던져넣은 뒤 벌을 풀어놓는 식의 화생방 공격, 공중 폭발하면서 수십개의 화살이 내려꽂히는 신무기 등이 등장해 눈길을 잡는다. 27일 개봉. 12살 관람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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