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아이들’
미제로 남은 실종사건 추적
배우들 녹아든 연기 돋보여
배우들 녹아든 연기 돋보여
새 영화 ‘아이들’
영화 <아이들>(감독 이규만)은 21년 전 상처를 덧낸다. 대개는 통증을 환기하는 수준이지만 당사자들은 봉합 실밥이 뜯기는 아픔일 터다. 1991년 대구 달서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소재로 하기 때문.
어른들이 기초의원 선거하러 투표장으로 간 새 마을 아이들이 도롱뇽을 잡으러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다섯 어린이들이 동시에 감쪽같이 사라진데다 화성 연쇄살인, 이형호군 유괴살인 등 흉흉한 일이 잇달아 벌어진 뒤끝이라 세간의 관심은 달아올랐다. 부모들은 살아 있을 거라는 바람에 생업을 놓고 아이들을 찾아나섰고 경찰은 연인원 30만명을 동원해 산속을 훑고 저수지물을 퍼냈다. 결과는 오리무중. 그런 탓에 온갖 괴소문이 나돌았다. 간첩이 북한으로 끌고갔다, 인근 군부대 유탄에 숨졌다, 심지어는 부모 중 하나가 범인이다 등등.
모든 노력에도 찾지 못했던 아이들은 2002년 태풍이 뒷산 골짝을 쓸어내린 흙더미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두개골에 외부 타격의 흔적을 남긴 채로. 범인은 분명히 있을 터이지만 2007년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이 됐다.
영화는 동물 다큐멘터리로 연출상을 받지만 조작이 드러나 대구로 좌천된 강 피디(박용우)의 시점으로 사건을 따라간다. 발생 몇 해 뒤인지라 틈입한 외부인의 눈에 사건은 ‘포인트’가 없어 방송할 거리가 없는 상황. 심드렁해 하던 그가 자료실에서 우연히 방송에 쓰이지 않는 녹화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아이들 부모 중 한 사람이 범인일 수 있다는 국립대 황 교수(류승룡)의 주장이 담겨 있었다. 서울로의 복귀를 꿈꾸는 강 피디에게 치명적 주장은 특종의 단서로 비치고 황 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강 피디한테 기초의원 선거와 관련된 음모설을 제시한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부모들의 심정은 아랑곳 않는 피디의 낯두꺼움과 사소한 정황증거로 자신의 편향된 주장을 ‘팩트’라고 우기는 대학교수의 광신은 실종된 종호의 집 화장실 똥을 퍼내고 멀쩡한 방 구들장을 파헤치기에 이른다. 경찰은 언론의 힘을 빌린 그들한테 줏대 없이 끌려다니고 마을사람들은 종호네 부모(성지루·김여진)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종호 부모가 견디기 힘든 것은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종호가 죽었다고 여긴다는 점. 영화의 흡인력은 배우들의 열연에서 온다. 자기 주장에 집착하는 황 교수 역의 류승룡과 가슴앓이하는 종호네를 연기한 성지루와 김여진의 연기는 돋보인다. 사건 속으로 녹아들어 배우가 사라진 모양새. 영화는 초반 사건을 둘러싼 지식인의 광기와 썩어 문드러지는 부모들의 가슴 쓰림을 충실하게 따라잡다가 후반에는 스릴러로 바뀐다. 하지만 재미를 위한 이 변화가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킨다. 개과천선한 강 피디가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범인을 잡아 나서는데, 범인을 찾아내게 되는 단서가 어설프다. 영화가 재미와 흥행 목적 외에 ‘범인은 분명히 있으며 꼭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한 점은 수긍하지만 범인을 특정 직업인으로 연결시킨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아이들>은 아픈 실화를 소재로 영화 만들기가 참 어렵다는 점을 확실하게 부각시킨다. 2월17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새 영화 ‘아이들’
하지만 종호 부모가 견디기 힘든 것은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종호가 죽었다고 여긴다는 점. 영화의 흡인력은 배우들의 열연에서 온다. 자기 주장에 집착하는 황 교수 역의 류승룡과 가슴앓이하는 종호네를 연기한 성지루와 김여진의 연기는 돋보인다. 사건 속으로 녹아들어 배우가 사라진 모양새. 영화는 초반 사건을 둘러싼 지식인의 광기와 썩어 문드러지는 부모들의 가슴 쓰림을 충실하게 따라잡다가 후반에는 스릴러로 바뀐다. 하지만 재미를 위한 이 변화가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킨다. 개과천선한 강 피디가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범인을 잡아 나서는데, 범인을 찾아내게 되는 단서가 어설프다. 영화가 재미와 흥행 목적 외에 ‘범인은 분명히 있으며 꼭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한 점은 수긍하지만 범인을 특정 직업인으로 연결시킨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아이들>은 아픈 실화를 소재로 영화 만들기가 참 어렵다는 점을 확실하게 부각시킨다. 2월17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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