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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죽음의 문턱…처절하게 곱씹는 생의 고마움

등록 2011-01-30 19:10

바위에 낀 팔 자르고 탈출한 클라이머 이야기
냉혹한 카메라의 물음 “이 순간 당신이라면?”
스크린으로 온 실화 ‘127시간’

사막 한가운데 딱 벌어진 암벽. 벽을 타고 내려가던 중 몸을 잠깐 의탁한 촉스톤(산의 암벽이 갈라진 곳에 낀 암괴)이 빠진다. 두드드~득 추락. 함께 떨어지던 돌덩이가 바닥 근처서 두 암벽에 끼어 멈추면서 한쪽 손이 틈에 쐐기처럼 감겨든다. 바위에 대고 화풀이도, 하소연도 해보지만 무정하게도 도무지 손을 풀어주지 않는다. 로프 한 동, 테이프슬링 몇 미터, 카라비너 몇 개, 헤드랜턴, 등산용 칼, 비디오카메라, 그리고 500㎖ 물병, 물주머니와간식거리 몇 개. 실금처럼 열린 푸른 하늘에 쌕쌕이가 남긴 비행운이 고요하다.

자, 당신이라면 어쩌겠는가? 영화 <127시간>은 2003년 4월 어느 날, 26살 청년 에런 랠스턴이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에서 겪은 희한한 상황을 그렸다. 산악자전거, 바위 타기 등 야외활동에 익숙한 그였지만 바위가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데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다. 등산용 칼로 바위를 쪼아보아도 하릴없다. 단단한 암석은 이를 퉁겨내고 중국제 칼날은 금세 무뎌진다. 피가 통하지 않는 손이 점점 검게 변하고 사막에도 같은 색깔 어둠이 내린다. 춥고 졸리고 그래서 긴 밤일 터. 암벽 사이에 두 발을 벌린 채로 지샐 수는 없는 일. 고리 지은 테이프슬링을 수미터 위 촉스톤에 걸어 내린 다음 몸을 묶는다. 첫날은 그렇게 가고 둘쨋날. 물통의 물은 점점 줄어들고 꼭 그만큼씩 시원한 맥주에 대한 그리움이 커간다. 뇨의. 처음엔 얼결에 방뇨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물주머니에 받는다. 재활용을 위해서다.

영화는 127시간의 사투 끝에 바위에서 자신의 팔을 끊고 탈출한 젊은이 이야기다. 물과 식량이 바닥나고 헤드랜턴의 불빛이 시나브로 흐려짐과 비례해 체력도 고갈된다. 자구의 희망이나 구조의 손길이 무망함을 온전히 깨닫기까지 수일이 걸리고, 바위에 끼어 온전한 몸으로 죽을 것이냐, 손을 자름으로써 불완전한 몸으로 살아남을 것이냐 결정하기까지는 며칠 더 걸린다. 인지상정일 터이다. 스스로 신체의 일부를 잘라낸다는 게 여간 일이겠는가. 그것도 맨 정신에.


영화의 질문은 후반으로 가면서 성격이 바뀐다. 당신이라면 어떠하겠는가? 팔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과 추위와 졸음이 뒤죽박죽인 사이로 젊은이의 의식은 현실과 환각을 넘나든다. 당장은 두고 온 스위스제 군용칼에 대한 아쉬움이 간절하지 않겠는가. 누구한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떠나온 사실이 후회스럽지 않겠는가. 설령 실종신고를 했더라도 24시간이 지나야 실종처리하는 제도가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몇 초 추락중에도 과거 삶이 필름처럼 복기된다는데, 그보다 천배 이상 긴 127시간은 삶을 수천번 곱씹을 수 있는 시간. 그 결과로 한 깨달음에 이르지 않겠는가. 역시나, 에런은 자신의 경험과 깨침을 책으로 썼으니 <비트윈 어 록 앤드 어 하드 플레이스>. 200여나라에 소개되었고 한국에는 <127시간>으로 번역됐다.

굳이 영화가 아니어도 극한에서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할 터. 스크린 속에서 ‘살려줘’ 외치면 관객 핏대가 불거지고, 등장인물이 오줌을 마시면 객석에서 꺽꺽 토악질하고, 비디오카메라에 대고 불효자 고백을 하면 엉뚱한 사람들이 눈시울을 훔치는 게 그 증거. 배낭을 꾸릴 때 걸려온 엄마 전화를 왜 받지 않았던가. 왜 식구들한테 좀더 곰살맞게 대하지 않았던가. 나는 왜 나의 행선지를 알릴 만한 관계망을 형성하지 못했는가. 나는 그동안 사는가 싶이 살아왔는가. 나란 인간은 도대체 뭔가 말이다. 심각한 내용과 대조적으로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은 보는 이를 더욱 처연하게 만든다.

아침 8시 반이면 비행하는 까마귀의 날그림자는 자연의 고고함을 각인한다. 하루 15분 동안 밥상보만큼 머무는 햇볕에 발을 담그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찬란한지를, 허공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혀를 담그면 자연의 은혜가 얼마나 감미로운지를 깨닫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벼랑 끝에서 누군가 박아둔 볼트를 만났을 때 그것에 대고 키스를 하는 속내도 마찬가지다. 곁에 없지만 머물다간 자취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것은 일원으로 소속되어 나는 너의, 너는 나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마움으로 확대된다.


<127시간>. 이거 생환 영웅담이 아니다. 기호만으로 된 수학공식처럼 관객을 차갑고 독하게 몰아쳐 인생공부를 시킨다. 2월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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