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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뒤끝 있는 ‘인생만사 새옹지마’

등록 2011-01-30 19:11

우디 앨런 감독의 ‘환상의 그대’…촘촘한 구성에 연기도 일품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49번째 영화 <환상의 그대>는 <맥베스>의 대사를 인용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각본까지 겸한 우디 앨런의 말이기도 하고 영화 전체를 꿰뚫는 주제이기도 하다.

노경이지만 마음은 청춘인 앨피(앤서니 홉킨스)는 조강지처 헬레나(젬마 존스)를 버리고 딸 또래 들병이와 결혼한다. 낙담한 헬레나는 가짜 점쟁이의 위로와 희망에 기대어 살아간다. 딸 샐리(나오미 와츠)는 쪼들리는 살림에 화랑에 취업하고 멋쟁이 상사 그레그(안토니오 반데라스)한테 반한다. 반거들충이 남편 로이(조시 브롤린)는 창 너머 아파트에 사는 디아(프리다 핀토)의 청초한 모습에 눈길을 준다.

영화는 우리네 신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내레이터가 등장해 누구누구의 사정은 어떤지 가보자 식으로 관객을 유도한다. 이러한 전지적인 시점은 등장인물의 고만고만한 역할 배분과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특정인물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영화를 관조하도록 만듦으로써 아무리 아옹다옹해도 인생은 환상이라는 감독의 시야로 끌어들인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를 말하는 또다른 방식은 특정시점에서 맺고 끊기를 거부하기.

예컨대 죽은 친구의 소설을 가로챈 로이가 대박을 터뜨리려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실은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샐리는 연모하는 상사 그렉에게 자기 화가 친구를 소개해주지만 두 사람이 눈이 맞아 뒤통수를 맞는다. 알피는 비아그라를 먹으며 노력한 끝에 꿈에 그리던 아들을 얻을 기회를 얻지만 분방한 아내의 아이는 누구 씨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비극도 희극도 아닌 풍자일 수밖에.

달리 말하면 등장인물들은 감독의 뜻에 철저히 따른다. 잘 풀린다 싶으면 예기치 않은 일이 불쑥 초를 치고, 꼬였다 싶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또다른 해결책이기도 하다. 당초 삶은 등장인물들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이 바라는 대로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

관람중에는 웃음이 터지지만 보고 나면 침울한 뒤끝이 오래간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나며 이야기의 밀도 역시 촘촘하다. 작년 칸영화제 공식 비경쟁부문 초청작이다. 27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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