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은의 환둥상자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쯤으로 소개되는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는 실은 그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녀관계라는 부서질 듯 허약하지만 질기게도 끊어지지 않는 역사가 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애를 써도 영원히 해결되지 않고 남는 슬픔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엄마와 딸의 관계일 것이다. 모녀관계를 다룬 수많은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어도, 그 어느 하나, 지겨운 애증과 절절한 후회로 얼룩지지 않은 이야기는 없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상투적 다짐과 “엄마가 없으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상투적인 그리움 사이, 그러니까 그녀의 삶과 그녀의 죽음 사이에서 딸들은 자신의 생과 사를 생각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내 안의 엄마를 끌어안을 것인가. 엄마라는 거울로부터 분리되기 위해서 엄마보다 차갑고 엄마보다 무거운 ‘무’와의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이 영화에서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성장한 딸은 열여섯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엄마가 단 한순간도 마약 없이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6년 만에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의 충격. 이제 우리는 이 딸이 온전한 자신을 찾기까지 지난 16년의 배가 넘는 시간이 필요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집안의 남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엄마의 병을 못 본 척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슬픔의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온 딸은 죄의식에 엄마의 마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나도 했어, 우린 이제 똑같아졌어.” 딸은 자신의 온 존재를 엄마의 추악한 거울로 만들어서 엄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자”며 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단 한 가지, 딸을 자신의 추악한 거울로 끌어들인다. 딸은 다시는 엄마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부유한 가정을 꾸린 피파 리의 현재로부터 그녀의 어린 시절로 거듭 돌아갈 때, 우리는 허공에 위태롭게 떠 있는 듯한 이 중년 여성의 표정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아직도 16년 전의 자신과, 혹은 그 시절의 엄마가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버려둔 모녀관계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그녀의 엄마가 삶을 환각 속으로 침잠시켰다면, 이제 엄마의 나이가 된 딸은 제도가 부여한 역할 안에 자신의 불안을 침잠시키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좋은 아내, 좋은 엄마의 형상에 대한 강박이 작동하지 않는 한밤, 그녀의 무의식은 몽유병이 되어 다음 날 아침이면, 부엌을 어지럽힌 폭식의 흔적이나 운전석에 수북한 담배꽁초로 나타난다. 16살 이후 보지 못한 엄마는 이미 오래전 죽었는데, 이제 그녀는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과 화해해야 할까. 영화가 그녀에게 선사한 해피엔딩은 따뜻하지만, 그걸 보면서도 여전히 질문은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