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필요가 있는 ‘감독’ 벤 애플렉
벤 애플렉은 우리 세대에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감독이다. 물론 그는 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로버트 잉글런드(<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와 해리슨 포드를 숭배한다고 공언해왔는데, 배우로서의 벤 애플렉은 운 좋게도 해리슨 포드의 이력과 어느 정도 유사한 아우라를 점유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그는 해리슨 포드의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잭 라이언 박사(패트리어트 게임, 긴급명령)를 연기하기도 했다(썸 오브 올 피어스). 하지만 가장 의미있는 그의 이력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벤 애플렉은 미국의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서 자랐다. 버거킹 광고에 출연하며 이제 겨우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기고 있던 그가, 일찌감치 보스턴 출신의 맷 데이먼과 쿵짝이 맞았다는 건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케임브리지나 보스턴이나 찰스 강만 건너면 아이리시 이민자들이 넘쳐나는 ‘우범지대로서의 보스턴’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어머니는 아일랜드 출신이다). 벤 애플렉은 맷 데이먼과 <굿 윌 헌팅>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하버드에서 청소 용역 일을 했던 아버지의 일상, 그리고 자신이 보스턴-케임브리지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빤히 보이는 미래를 통과했던 유년시절의 경험을 담아냈다. <굿 윌 헌팅>에 등장하는 벤 애플렉과 케이시 애플렉(동생)의 모습은 실제 그들의 삶과 멀지 않은 풍경이었다.
배우로서의 성공적인, 그러나 확연히 정형화된 이력을 소화한 이후, 벤 애플렉은 첫번째 감독 연출작으로 <가라, 아이야, 가라>(2007)를 선택했다. 데니스 러헤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마찬가지로 러헤인의 원작을 영상에 옮긴 <미스틱 리버>(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키며 그를 “이스트우드를 이을 단 한 명의 배우 출신 연출자”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그는 <가라, 아이야, 가라>를 연출하며 단순히 문자를 이미지로 확장하는 걸 넘어서 그 자신의 경험을 충실히 투영하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믿을 수 없이 근사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유수의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합당한 상찬이었다.
지금 우리 앞에 그의 두번째 연출작 <타운>이 당도했다. <굿 윌 헌팅>에서부터 첫번째 연출작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자란 보스턴-케임브리지에서의 경험에 집착해온 벤 애플렉은, 두번째 연출작에서 드디어 보스턴이라는 공간 자체를 주인공 삼기에 다다랐다. <타운>은 보스턴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에 미루어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범죄의 이력을 성찰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이 순환구조로부터 이탈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개인의 노력을 ‘단정하기 어려운 윤리적 층위’에서 그려낸다. <타운>은 믿을 수 없이 준수했던 전작에 비해서나, 영화의 외연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야심과 비교해볼 때 다소 힘이 빠지는 범작이지만, 범죄 장르물이라기보다 탄탄한 골격의 드라마로서 원작소설에 뒤지지 않는 꽤 훌륭한 성과를 보여준다. 그가 다시 한번 보스턴 우범지대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아직은 괜찮다.
<뉴스위크>와 <헤럴드 선>을 비롯한 수많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타운>의 ‘감독’ 벤 애플렉을 제2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스트우드와 비교하는 건 섣부른 과대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회의론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젊은 세대를 말로 연민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의 작업에 대해 유난히 비관적인 한국은 특히 그렇다. 그러나 같은 나이의 저 둘을 떠올려보면 벤 애플렉이 너무나 확연히, 더 나은 연출자임에 틀림없다. 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벤 애플렉은 10년 후, 20년 후, 어쩌면 내년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문제적 연출자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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