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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북유럽 풍광 고스란히 담긴 ‘노년의 하룻밤 여행’

등록 2011-02-07 18:13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
은퇴앞둔 기관사 ‘자아찾기’
일흔다섯살 노배우의 연기는 침엽수처럼 무표정하다. <오슬로의 이상한 밤>에서 40년 동안 오슬로와 베르겐을 오가는 열차를 몰다가 은퇴하는 기관사 오드 호르텐으로 나오는 보르 오베는 웃음, 울음은 물론 눈깜박임조차 없다. 목소리도 높낮이 없는 무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상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배경이 되는 오슬로-베르겐 철도는 노르웨이를 남북으로 500㎞를 종단하는 노선이다. 1894년에 시작해 1909년에 완공된 이 구간은 높은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탓에 공사에 어려움이 많았고 북대서양의 저기압이 눈, 비, 강풍으로 몰려와 유지·보수가 까다롭다. 걸리는 시간은 대략 7시간으로, 하루 네 차례 운행한다. 주인공 오드의 무표정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철도와 빼닮았다. 40년 동안 ‘말없음표’처럼 터널이 이어진 장거리를 주야로 반복 운행했으니 표정 없음이 뼈에 사무치지 않았겠는가.

사달은 마지막 운행 전날 벌어진 은퇴 기념 파티. 담배를 사겠다며 일행에서 뒤처진 게 결국 2차 자리가 아닌 엉뚱한 집 아이의 침대맡을 지키게 되면서 일탈이 시작된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 자기의 일생을 돌아보는 스크루지 영감의 하룻밤 여행과 흡사하다. 마지막 열차를 떠나보낸 그는 오랜만에 요양병원에서 홀로 지내는 노모를 방문한다. 전날 아이한테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본 데 이어 홀아비로 늙은 자기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게 된다. 이어 공항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애지중지하던 보트를 양도하러 갔다가 엉겁결에 나체 몸수색을 당한다. 몸을 수색당하면서 그는 자기 삶이 열쇠 두어 개와 성냥, 담배 파이프로 요약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연은 겹치기 마련. 길거리에 쓰러진 노인의 집에서 그가 마주하는 것은 또다른 자기의 모습이다. 40년 한결같은 기차 운전은 그의 타고난 소심함과 일체였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던 터다. 하지만 한쪽 구석에 놓인 점프 스키는 어머니의 병실에서 본 점프 스키 차림의 처녀적 사진과 겹치면서 소심함의 반대편 쪽에 있는 또다른 자아의 잠을 깨운다.

영화 속 오슬로는 주인공의 지난 삶처럼 무채색이다. 오슬로에서 출발한 열차가 베르겐으로 가까워지면서 주변이 점점 다채로운 색깔로 바뀌듯 영화는 후반으로 가면서 색깔을 얻는다. 사진, 빨간구두, 운석, 우유처럼 작은 소품들이 장면과 장면을 매끄럽게 잇는다. 주인공이 병실에 들고 간 빨강·노랑 튤립은 그가 수없이 점만 찍고 돌아온 500㎞ 남쪽 베르겐의 천연색 풍광과 그곳에 사는 곱디고운 노처녀에 대한 복선을 암시한다.

<오슬로의 이상한 밤>은 독특한 이야기와 함께 북유럽 풍광과 정서를 맛볼 수 있다. 오슬로~베르겐의 아름다운 철길은 꿈과 현실을 오가게 만든다. 주연 보르 오베는 북유럽의 대표적인 배우. 1961년 데뷔해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오가며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연극 등에서 폭넓은 연기를 해왔다. 1964년 카를 드레위에르 감독의 <게르트루드>에서 게르트루드의 애인인 에를란 얀손 역을 맡아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킹덤 1>(1994)과 <킹덤 2>(1997)에서 병리과 의사 닥터 본도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0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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