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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시애틀 안개가 감싼 사흘 동안의 사랑

등록 2011-02-13 19:48

만추
만추
귀휴한 여죄수와 남창…신분과 언어 내려놓은 만남
현빈·탕웨이 ‘사랑만 해도 모자란 인생’ 섬세하게 연기
네번째 리메이크 ‘만추’

매미가 한번 울려고 7년을 땅속에서 산다고 한다. 신춘에 웬 매미 타령? 늦가을 놓치고 겨울을 건너 개봉하는 <만추>나 피장파장이다. <만추>는 감옥살이 7년 만에 죽은 어미를 묻기 위해 사흘 귀휴를 나온 여죄수 이야기다. 여죄수는 매미처럼 울고 매미처럼 사랑을 한다. 그리고 다시 죽음과 같은 감옥으로 돌아간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네번째 리메이크다. 1966년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나온 이래 1972년 일본에서 첫 리메이크작 <약속>이 나왔고, 1975년 <육체의 약속>(김기영 감독), 1981년 <만추>(김수용 감독)가 뒤를 이었다. ‘한국 영화사 최고의 걸작’이라는데 원작을 볼 수 없으니 유감. <춘향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리메이크작을 거느린 것으로 미루어 그러려니 짐작한다. 애초 문정숙-신성일 짝은 김지미-이정길, 김혜자-정동환으로 이어졌고 이번에는 탕웨이-현빈이니 국제적이다.

주인공이 중국인-한국인인 만큼 만남의 무대는 제3국인 미국이다. 기존의 <만추>가 한국의 낙엽을 코드로 한다면 이번에는 한해 가운데 55일만 빼고 늘 시애틀을 적시는 안개와 비다. 애나(탕웨이)와 훈(현빈)이 만나는 사흘 가운데 햇빛이 난 시간은 함께 수륙양용 오리버스에 탔을 때뿐이다. “이맘때 시애틀은 늘 안개가 많고, 비가 오는데, 지금은 해가 났네요. 햇빛을 즐기세요. 안개가 다시 끼기 전에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후딱 갑니다. 즐기세요. 마음을 열고 사랑하자구요.” 영화의 주제는 운전사가 안내멘트로 깔고, 우리의 주인공들이 실행에 옮기는 모양새다.

버스 좌석에 침잠해 있는 애나. 옷에서 묵은내가 날 법하다. 헐레벌떡 뛰어오른 사내 훈. 모두 시애틀로 가지만 한 명은 장례식행이고, 또 한 명은 잠적도피행이다. 훈은 미국에 온 지 2년째, ‘한국 누님’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남창’으로 한 누님의 남편한테 쫓기는 신세다. 애나한테 모자라는 버스비를 빌리고 대신 시계를 맡기는 ‘작업’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제 국제적으로 놀아보자’는 훈의 심사는 영화 제작자와 흡사하다.

만추
만추
이들은 각각 손전화를 신분처럼 갖고 있다. 교도소에서 지급한 애니의 것은 시시로 수인번호와 위치를 복창시키며 확인시키고, 훈의 것에서는 누님들을 끊임없이 이어주는 동업자의 목소리가 질기다. 애나가 막힌 귀에 귀고리를 꽂아보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보지만 역시 죄수일 뿐이고, 훈이 수탉 벼슬 머리를 이리저리 쓸어보지만 남창임은 변함없다. 관객도 알고 스스로들도 안다. 버성길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애나와 훈이 가까워지기는 옹알이 대화를 통해서다. 공통어인 영어가 모두에게 제2 외국어인 까닭. 단문 옹알이가 의외로 진심을 전하기 쉬운가. 문닫은 놀이공원에서 장난처럼 시작한 립싱크놀이는 입의 언어를 뛰어넘어 몸의 언어로 치환된다. 애나가 느닷없이 모국어인 중국어로 과거를 고백하고, 훈이 뜻도 모르고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인 하오(좋아)-화이(좋지 않아)로 응대하는 불협화 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들의 언어는 더 이상 언어가 아니고 울음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부르는 매미의 그것처럼.

후반으로 가면서 처음 훈이 건넸던 시계는 단순한 ‘작업도구’에서 ‘공유하는 시간’의 상징으로 진화한다. 남은 시간의 짧음이 절감되면서 푸석거리던 가을볕이 강남행 제비꼬리처럼 명료해지는 것. 시계를 내 밀라 네 밀라 하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마음과 통한다. 어쨌든 주어지기는 사흘이 다다. 사흘이 짧다고? 7년 만의 외출인 애나나 매미한테 그 시간은 삶의 전부인 것. 영화는 두 남녀가 신분과 언어의 옷을 벗고 상호 ‘쌩얼인간’으로 접근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면서 “우리 삶은 사랑하기에도 모자란다”고 웅변한다.

현빈의 쏙 빠진 마스크가 여자 후리기 선수에서 점점 사랑에 빠져드는 기둥서방에 제격이다. 코트주머니에 깡똥하게 손을 찌른 모습이나 얼핏 딱딱해 뵈는 연기도 역에 썩 어울린다. 탕웨이는 그 위다. <색, 계>에서 불같은 사랑을 선보였던 그가 이렇게 다른 면모를 내보이다니…. ‘우물 같은 음울’에서 ‘음울 위에 뜬 사랑’을 거쳐 ‘초탈한 사랑’으로 미묘하게 변해가는 표정이 볼만하다. 손끝, 발끝, 계산된 듯한 동작은 어떻고.


<만추>는 이제 일본에 이어 미국 버전을 얻어 국제적인 작품이 됐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5초 만에 인터넷 매진된 바 있으며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17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말로 표현 못해도 통하더라고요”

여주인공 탕웨이

“짧은 한국어지만 알아들어주는 즐거움이 크다. 나도 한국어가 아름답게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잘 배워 눈을 쳐다보면서 대화하고 싶다.”

11일 장충동 호텔에서 만난 탕웨이는 언어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처음에 감독과 소통이 잘될까 두려웠다. 구사하는 영어가 서로 달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뜻을 100%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소통이 잘됐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데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신비한 경험이었다. 나중에는 둘만의 언어가 생겨 통역사가 우리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김태용 감독은 “리딩과 리허설 과정에서 역할에 푹 빠지면서 울기도 하더라”며 그의 집중력을 높이 샀다.

탕웨이가 주인공과 주인공 사회에 몰입하는 과정은 영화 속 주인공 애나가 옹알이 대화를 넘어 훈과 접근해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그는 제작사의 배려로 미리 시애틀로 옮겨 그곳 출신 매니저의 도움으로 화교사회와 그 문화에 젖어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시애틀 영어를 배웠다. 런던 리딩대학에서 드라마 수업을 받으면서 런던의 영어식 딱딱한 발음에 익숙해 있던 차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저장성 항저우에서 자란 그가 드라마와 영화 작업을 하면서 베이징어와 광둥어를 마스터한 것도 비슷한 과정이다.

“애나는 오랜 옥중생활로 희망 없이 살아왔으며 단어조차 잊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에게 다가온 훈은 천사다. 그와의 만남은 얼음이 불구덩이에 들어간 것과 흡사하다. 출소 뒤 레스토랑에서 그를 기다릴 때 들린 문 여는 소리는 하늘에서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긴 키스신을 두고 원래는 시나리오에 없었다면서 장례식 장면을 찍을 때 감독이 와서 그런 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는데 필요하겠다 수긍했으며 그때부터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했다.

“영화는 ‘가장 진실된 환상의 세계’다. 허구지만 가장 현실적이다. 영화 속 나는 허구이지만 연기라는 작업은 나를 현실적으로 만든다. 평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 뭘 해야 할지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배우는 다르다. 역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현실성을 갖추게 된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원래 계획 없이 산다고 했다. 2006년 그의 출세작인 <색, 계>에서 격정적인 정사신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방송출연이 금지되고 텔레비전 광고가 줄줄이 해약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한 것도 털털한 심성과 통해 보인다. <만추>를 계기로 그는 국제영화계에 한발을 디뎠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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