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 임수정
현빈·임수정 주연 영화 ‘사랑한다…’
우리도 이런 영화가 생겼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감독 이윤기)는 헤어지기로 한 날 오후 3시간 동안 벌어진 젊은 부부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다룬다.
사흘 전쯤 남자가 생겼다고 고백하는 도입부의 승용차 안을 빼면 모두 집 안이다. 감독은 몰카처럼 몇 군데에 카메라를 두고 등장인물의 미세한 움직임과 대화와 표정의 변화를 포착한다. 핸드헬드나 줌 도움 없이 요지부동 고정된 카메라로만 찍으니 움직임은 움직임으로 사각틀 안에 아주 확실하게 잡힌다.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시콜콜 드러나니 배우들은 무척 곤혹스러울 거다.
헤어지는 마당에 그 흔한 실랑이조차 없다. 아내는 약간은 현실감이 없으며 하고 싶으면 그냥 지르는 스타일이고, 남자는 꼼꼼한데다 여자가 원한다면 뭐든 들어주는 성격이다. 그것이 이별일지라도…. 왜냐고 묻거나 따지지도 않으니 과거 이야기가 끼어들 틈도 없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오고 그것을 따라 이웃집 10년차쯤 되는 부부가 다녀가는 것을 빼면 사건도 없다. 적당히 묻어갈 건덕지가 없으니 배우들은 죽을 맛이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헤어지자고 일단 합의한 터, 폭우가 쏟아져 어쩔 수 없이 연장된 시간의 어색함 속에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쿨하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일 터다. 남녀는 짐을 싸다가 나온 조그만 강아지 인형 이야기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며 세제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후루룩 소리를 화제 삼는다. 고양이라도 한마리 들어왔으니 망정이지 그마저 없으면 질식할 정도다. 고양이가 할퀸 자국에 약을 바르는 일이 호들갑스럽게 비친다. 물에다 물 탄 차이를 드러내기만큼이나 어려운 연기다.
그걸 현빈과 임수정이 해냈다.
남편한테서 새남자의 전화를 건네받아 통화하는 임수정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는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다가도 또다시 흔들리고, 또다시 그에게 이상한 연민도 느끼고, 그를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해서 고민하는 감정을 보여줘야 했다”며 “쉽지는 않았지만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됐고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했다. 임수정의 연기가 비교적 겉으로 드러나는 반면, 현빈의 그것은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연기다. 양파를 썰다가 나는 눈물에 진짜 눈물을 섞는 식이다. 현빈은 영화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잡고 싶다면 잡았을 것 같다”며 미묘한 연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젊은 배우한테 큰 짐을 지운 이윤기 감독 참 독하다. 좀 안됐던지 공간을 제3의 주인공으로 세웠다. 우선 종일 내리는 비로 축축한 정서를 깔았다. 좁게 올린 복층주택, 아직 새것 같은 주방기기, 칫솔 두 개가 꽂힌 욕실 컵 등으로 5년차 부부의 집을 표현했다. 카메라는 버리지 못해서 생겨난 지하실 컬렉션, 바닥 여기저기 책이 널린 서재에서 남녀의 성격을 훑는다.
특이한 것은 이들 모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했다는 점. 임수정은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마음으로 참여했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있으면 계속해서 참여할 생각”이라고 했다. 연기도 잘하고 마음씨도 그만이다. 제61회 베를린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현빈은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뒤 해병대에 입대할 예정이다. 3월3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