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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등록 2011-02-20 18:30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허지웅의 극장뎐]

우리는 때때로 사랑이라 불리는 주관적이고 불균질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세상 사람들에 의해 거의 신격화되다시피 한 이 감정이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책과 음악에서와는 달리 조건과 필요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조건과 필요란 종교에 가까운 수준의 믿음이거나, 욕정, 헌신, 번식에의 의지, 혹은 돈에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사람마다, 더불어 상황마다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죽음이 멀지 않은 두 인간 사이, 마찬가지 이유로 별다른 조건과 필요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사랑의 짧은 순간을 포착해낸다. ‘고맙다’는 단어 이외에 다른 어느 무엇도 필요하지 않은 이들의 관계는 사랑의 가장 차가운 표정을 알고 있는 가장 냉소적인 관객마저 꿈처럼, 그리고 눈물처럼 젖게 만든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강풀의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사례 가운데 비교적 본연의 꼴에 충실한 작품이다. 이는 적절한 전략이다. 그간 강풀 원작의 콘텐츠가 만화 이외의 영역에서 아쉬운 결과를 거듭한 데는 명백한 원인이 있다. 강풀의 초기작 웹툰은 대부분 스크롤의 서사를 통해 추진력을 가졌다. 단순히 ‘줄거리’뿐만 아니라 마우스의 휠을 굴리는 ‘스크롤’이라는 행동이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 서사의 꼴을 갖추는 것이다. 아무리 강풀식의 나이브한 캐릭터라도 이 안에서만큼은 생명력을 보장받았다. 마우스 스크롤을 서사의 또다른 영역으로 소환한 것이야말로 강풀이(정확히 말하자면 강도하의 <위대한 캐츠비>와 함께) 인터넷 웹툰에 가져온 가장 유력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영화 <아파트>나 <바보>의 경우 이 같은 강풀 텍스트의 정체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왜 그 작품들을 좋아했는지 파악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결국 스크린 위에 드러나는 건 별 현실성이 없는 단선적이고 순진한 캐릭터들의 예상할 만한 행동들뿐이었다.

반면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스크롤의 서사가 유효한 ‘웹툰’으로서의 매력보다 이야기 그 자체에 더 큰 가치가 있는 경우였다. 이는 <26년> 이후 강풀 웹툰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애초 측량이 불가능한 ‘진심’이라는 화두를 잘 다듬어진 이야기와 캐릭터를 빌려 정공법으로 밀어붙인 원작의 무게감을 별다른 손상 없이 그대로 옮겨왔다. 이는 이순재, 송재호, 윤소정, 김수미 같은 배우들의 몸에 꼭 맞는 훌륭한 연기를 통해 빼어난 울림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과거 최불암, 나문희, 송재호, 윤여정 조합으로 만들어질 뻔했던 공중파 티브이 드라마의 불발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과연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반드시 순전한 형태의 사랑을 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아니, 애초 그것이 순전하고 순전하지 않다고 평가하는 잣대마저 이미 지나치게 주관적인 재량이다.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어떤 것들이 순전한지에 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은 갈수록 어렵고 이별은 언제나 가깝다. 그대를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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