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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겁에 질린 백조, 검은 날개를 꺼내다

등록 2011-02-20 18:35

블랙 스완
블랙 스완
선악과 미추마저도 통합되는듯한 심리묘사 탁월
프리마돈나의 시련과 광기 내털리 포트먼이 열연
2011 아카데미상 5개 부문 후보 ‘블랙스완’

<블랙스완>은 주인공이 미치고 관객도 미치는 영화다. 모티브가 되는 발레 ‘백조의 호수’의 작곡자 차이콥스키가 본다면 혀를 찰 노릇이다. 차이콥스키의 곡을 분해·조립해 배경음악을 만들었듯이 발레를 무대 밖으로 끌어내 현실에서 재해석했다. 감독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같은 ‘스키’ 집안이라 가능했지 싶다.

뉴욕발레단의 예술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시즌오프닝으로 재해석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기로 한다. 이와 함께 프리마돈나 베스(위노나 라이더)를 교체키로 하고 단원 중 몇 사람을 점찍는다. 그 가운데 니나(내털리 포트먼)가 제1후보로 오른다. 프리마돈나는 아주 대조적인 오데트(백조)와 오딜(흑조)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자리. ‘엄친딸’ 니나는 순수하고 나약한 백조 연기에 능하지만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는 미흡하다. 이에 반해 새로 입단한 릴라(밀라 쿠니스)는 거리낌없는 행동과 성격으로 흑조와 궁합이 딱 맞는다. 여러 소문을 낳으며 니나는 프리마돈나가 되고 릴라는 대역으로 선발된다.

스타는 곧 정상이니 누구처럼 해 봐서 잘 아는 자리가 아니잖은가. 니나는 완벽한 무대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연습하지만 감독은 릴라와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심지어 연습이나 공무를 구실로 밤늦게까지 남게 해 몸을 점검하고 이상한 권유를 한다.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잠깐 지각을 할라치면 릴라가 자기를 대신해 희희덕거리며 연습하고 있다. 밀려난 베스가 차도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기뻐했던 엄마가 유치한 질투를 한다. 등에 느닷없는 피가 맺히는가 하면 손가락 끝에서 까닭없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니나는 점점 미쳐간다.

영화의 거죽은 성공을 향한 발레리나 소녀의 시련과 광기, 라이벌을 향한 질투와 동경을 다룬다. 한꺼풀 걷어내면 인간에게 감춰진 양면성에 관한 사유가 탱탱하다.

차이콥스키의 왕자가 흑조한테 속아 넘어갔다고? 웃기는 소리다. 백조가 상징하는 ‘순결’은 무력함과 정적과 백치미의 이름이고, 흑조의 ‘사악함’은 강함과 역동과 관능미의 다른 이름이다. 막상 평생을 백조하고 산다고 생각하니 깝깝했을 거다. 왕자는 흑조인 줄 알고도 은근슬쩍 흑조한테 눈길을 주었다는 편이 옳다.

그런데, 백조-흑조가 어디 따로 있는가? 없다. 흰 새면 두루미 또는 해오라기이고 검은 새면 까마귀나 독수리일 터. 형태도 다르고 노는 물이 다르다. 자연에는 왕자처럼 헷갈릴 일이 전혀 없다. 엇비슷한 모양이지만 색깔이 다른 백조-흑조는 동화나 마법세계에서나 가능하다. 발레 속 백조-흑조는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었을 뿐. 차이콥스키가 동화를 차용한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프리마돈나가 두 역할을 한꺼번에 하도록 하면서 ‘삶은 그런 거야’라는 암호를 숨겨둔 게 아닐까.

다시 영화 얘기. 니나는 발레리나였던 엄마에 의해 온실에서 키워졌고, 릴라는 그런 부모 없이 거리에서 자랐다. 니나가 백조라면 릴라는 흑조인 것. 무대의 발레처럼 백조인 척, 흑조인 척이 아니다. 니나가 생각 있는 아이라면 릴라, 즉 흑조의 세계에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릴라를 향한 니나의 마음은 당연히 질투와 선망을 아우른다. 자기 자리를 뺏길까 두려워하면서도 리허설 전날 저녁 함께 술집으로 향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이런 심리를 시각화하는 데는 거울이 안성맞춤. 마침 발레연습장이 거울투성이고 분장실 역시 그렇다. 니나는 끊임없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고, 관객들은 니나가 보지 못하는 실상과 허상을 한꺼번에 본다. 거울 속의 니나는 표정이 일그러지고 때로는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거울이 깨지고 깨진 조각은 누군가를 찌르는 무기가 된다. 감독은 용의주도하게 거울 자체와 그 이미지를 활용한다.

영화의 양면성에 관한 사유는 완벽함으로 넘어간다. 양면이 통합되어 나뉘지 않은 상태, 즉 자연으로 돌아갈 때 완벽에 이르는 것. 완벽의 세계에 미추, 선악의 구분은 없다. 무의미하다. 이미 분할된 세상의 인간이 완벽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벽을 깨야 한다. 영화에서 거울은 바로 그 벽이다.

발레리나의 몸을 만들어 출연한 내털리 포트먼이 보여주는 프리마돈나 연기는 일품. 쟁쟁한 조연들 역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 모두를 아우른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또라이’임이 분명하다. 2011년 아카데미상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24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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