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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운명이 아무리 애써도 사랑을 막지는 못하더라

등록 2011-02-27 18:53수정 2011-02-27 20:55

<컨트롤러>
<컨트롤러>
조정국의 설계도를 이탈한 남녀
숨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되고…
자유의지가 무언지 묻는 SF물
필립 K. 딕 소설 각색한 ‘컨트롤러’

사랑은 운명인가, 자유의지인가.

조지 놀피 감독의 새 영화 <컨트롤러>가 던지는 질문이다. 원제는 ‘디 어저스트먼트 뷰로’.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더불어 3대 에스에프(과학소설) 작가로 꼽는 필립 K. 딕의 소설이 원작이다. <블레이드 러너>(1982), <토탈 리콜>(1990),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페이첵>(2003), <넥스트>(2007)에 이어 영화화된 작품이다.

그가 만들어낸 작품 속 미래세계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고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이번 질문은 뻔하지만 풀어가는 방식이 독특하다.

뉴욕 빈민가인 브루클린 출신의 최연소 하원의원 데이비드 노리스(맷 데이먼). 상원의원에 출마해 경쟁자를 두 자릿수 이상 따돌린다. 그·런·데 돌연 변수가 생겼으니 스물네살 무렵 동창회에서 엉덩이를 깠던 사진이 신문에 실린다. 지지율 급락. 선거에서 패한 그는 홀로 화장실에서 승복연설을 준비한다. 선거참모들이 적어 준 판에 박힌 말. 그·런·데 변기 칸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튀어나온다. 현대무용을 하는 엘리스(에밀리 블런트).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 심한 장난을 치고 경비한테 쫓겨 남자화장실에 숨었던 것. 말이 통하는 그들은 금세 친해지고 솔직한 엘리스한테 힌트를 얻은 데이비드는 명연설로 유권자들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어·느·날 아침 데이비드는 직장으로 가기 위해 일회용 커피잔을 들고 공원을 가로질러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에 올라보니 낯익은 얼굴 엘리스가 의자에 앉아 있다. 옆자리에 앉아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데 커피가 엎질러진다. 유쾌한 시비가 벌어지고 엘리스는 데이비드한테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그런데’는 어저스트먼트 뷰로 즉 ‘조정국’에 의해 계획된 미래설계도에 따른 것이고 ‘어느 날’은 조정국 직원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다. 데이비드와 엘리스는 화장실에서 단 한번 만나고 엘리스의 역할은 데이비드의 연설을 빛내는 걸로 끝이었다. 공원을 가로지를 때 조정국에서 커피를 쏟아 그 버스를 지나치게 함으로써 왠지 모르게 끌려드는 두 사람을 다시 마주치지 못하게 할 계획이었다. 900만명의 뉴욕 사람들 틈에서 이들이 조우할 확률이 18조분의 1이니 대단한 인연이다. 커피 사건 뒤부터 자석처럼 끌리는 두 사람의 인연과 이들을 떼어놓으려는 운명 조정국과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삶은 우연의 외피를 입은 필연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진학, 직업, 연애, 결혼, 출산 등을 돌아보라. 그것에 앞서 버스나 택시를 놓치거나, 통화중 전화가 뚝 끊기거나, 커피가 엎질러진다거나, 구두가 벗겨지거나, 아파트 열쇠가 갑자기 빡빡해지거나 등 사소한 무언가가 있지 않았는지. 하지만 지금 이곳, 매순간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행동한다면 미칠 노릇일 거다. 운명에 둔감함은 신의 배려이고, 운명을 믿지 않음은 차라리 신의 은총이다. 뱃전의 심청이 치마를 뒤집어쓴 채 어두운 바다로 뛰어내리는 것도 용감이 아니라 둔감에서 비롯한다. 영화 속 조정국은 이러한 삶에 드리운 운명의 그림자를 에스에프로 풀어낸 것이다.


자유의지에 관한 ‘썰’도 그럴듯하다. 인간한테 자유의지를 주었더니 중세 암흑기와 제1·2차 세계대전이 생겨났다는 거다. 인류가 만들어진 이래 조정국에서 역사를 관장하여 로마시대까지 번영을 누렸는데 풀어주어 멋대로 두니 중세의 암울한 시기가 생겨났다는 것. 자유의지를 회수하니 르네상스였고 또 될 성싶어 풀어주니 편을 갈라 대판 싸움을 벌인 게 세계대전이라나.

실상은 그 반대일 수도 있으나, ‘역사는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적이다. 정해진 운명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소수의 사람들 말이다. 사랑도 그러할지니.

영화는 운명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해도 이에 적극적으로 맞선다면 결국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다. 단, 쌍방이 자기의 모든 것을 걸었을 때만 그렇다. 정말 눈물 나게 아름답기는 한데, “미합중국 대통령? 세계 제일의 무용가? 그까짓 거 안 해도 좋아”라고 내던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걱정 마시라. 조정국도 바쁘고 손이 모자라 다 신경 못 쓴단다. 보통사람이라면 남자화장실에 머물 때 미녀가 숨어들 리 없고, 그 안에서 뽀뽀할 일은 더욱 없다. 여자의 무릎에 커피라도 쏟으면? 어이구, 따귀나 안 맞으면 다행이라고 여겨야지. 3월3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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