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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비정한 도시…굴레쓰인 자들의 절규란

등록 2011-03-03 20:01

전규환 감독의 ‘애니멀 타운’
아동성애자를 따라가는 카메라
출구없는 가난과 젊음 클로즈업
국외서 호평받은 ‘3부작’ 중 하나
신예 전규환 감독의 새 영화 <애니멀 타운>은 인간의 도시를 동물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당연히 도시는 정상적인 동물이 살아가기 몹시 불편한 서식지다.

오성철(이준혁)이 사는 곳은 철거를 앞둔 저층아파트. 가스도 수도도 끊겨 냉방이고, 근처 학교에서 수돗물을 받아다 쓴다. 건설경기 침체로 잡부로 일하던 신축아파트 현장도 끝이다. 무가지 구인광고로 전화를 하지만 새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반 남은 일당은 언제 받을지 난망하다. 관리인은 나가라고 재촉하고 불쑥 찾아드는 사내들은 집 안을 뒤집어엎는다. 그래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양말을 꼬박꼬박 신는다. 그의 발목에 시커먼 발찌가 언뜻 보인다.

인쇄업자 김형도(오성태)는 치킨집 광고지, 교회 주보 등을 인쇄하고 배달한다. 아침마다 딸아이는 늦잠을 자고 아내는 잔소리를 하고 늘 혼자서 밥을 먹는다. 여기도 불경기는 마찬가지. 달랑 둘이던 직원 가운데 한 명을 자른다. 그가 마음을 붙이는 교회의 장로는 술을 마시고 목사는 내기 당구를 친다. 그의 눈에 일자리를 구하는 오성철이 띄고 언뜻 보아 이유를 알 수 없는 미행이 시작된다.

아동성애자인 오성철과 그로 인해 가정을 잃어버린 김형도의 대결을 기본구도로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일 뿐. 영화는 출구 없는 도시인의 초상을 그린다. 오성철이 성적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약을 삼키고 그의 눈이 폐지를 줍는 9살 여자아이한테 향하는 것은 극적 긴장을 위한 장치이다. 그의 눈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 텔레비전이 유일한 동무인 할머니와 자매가 사는 단칸방이 보인다. 나라에서 보조금과 쌀푸대를 주지만 오성철이 제도와 도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자매가 직면한 가난은 대물림되어 엿볼 만한 미래가 없다.

무심한 듯이 들리는 텔레비전 뉴스는 멧돼지가 도심에 들어와 날뛴다는 소식을 전한다. 인간의 번성으로 서식지를 빼앗긴 멧돼지는 전자발찌를 찬 채 제도와 도덕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청년 오성철과 하등 다르지 않다. 오성철은 어렵사리 택시운전사로 나서지만 멧돼지가 주린 배를 채우기 쉽지 않은 것처럼 사납금을 채우기 어렵다.

오성철은 뒤틀린 자본의 행태 속에서 일상화한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한국 청년의 다른 이름이다. 그가 아스팔트에서 피를 쏟고 쓰러지는 멧돼지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은 비정한 도시를 향한 절규다. 한국전 뒤의 젊은이의 초상을 그린 이범선의 <오발탄>을 연상시킨다.

2009년에 완성된 <애니멀 타운>은 <모짜르트 타운>(2008), <댄스 타운>(2010)과 함께 전 감독의 타운 3부작 가운데 하나. 이들은 스톡홀름, 제네바, 상파울루, 뭄바이, 토리노, 마닐라 등 해외영화제에서 끊임없이 초청돼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전 감독은 대가의 면모가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 작품 중 <애니멀 타운>이 겨우 국내 상영 기회를 얻었다. 돈 되는 상업영화에만 상영관을 여는 국내 영화계에서 저예산 영화가 외국을 전전하는 모양은 <애니멀 타운>의 주인공 오성철의 처지와 흡사하다.


막판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몹시 쓰라리다. 상영시간 97분. 10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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