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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알 수 없는 이별 ‘공허’하더라

등록 2011-03-13 20:58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남다은의 환등상자]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감독 이윤기의 여자 주인공들을 보고 있자면 늘 마음 한편이 답답해지곤 했다. 캐릭터 자체에 이미 그런 느낌이 배어 있기도 하지만,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한 여자들의 전사를 알려주지 않고 이들을 세상 한가운데 툭 떨어뜨린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 때문에 종종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건, 여자들의 행위(그렇다고 그것이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건 아니고 그저 ‘시간을 살아내기’에 가깝다) 그 자체이지, 행위의 근원이 아니다. 이를테면 무슨 이유로 그녀가 세상 문을 열지 못하고 소심하게 자꾸 웅크리는지(<여자, 정혜>), 하루만 다른 여자를 연기해 달라는 낯선 남자들의 청을 받아들이는지(<아주 특별한 손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옛 애인을 따라나서는지(<멋진 하루>) 영화는 명징하게 말해 줄 생각이 없다. 혹은 영화가 뭔가 단서를 던져 주어도, 우리는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이 여인들의 그늘을 설명해줄 플래시백 같은 건 없거나 중요하지 않고, 그래서 그의 영화들에 늘 따라오는 ‘상처와 치유’ 같은 수식어 역시 실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핵심을 피해 혹은 오인을 덮어두고 이 여인들은 시간을 견디는데, 그때 말이 아니라, 인물이 속한 풍경이 이들의 마무리되지 못한 미묘한 감정들을 불쑥 드러낸다. 정혜가 홀로 밥 먹는 풍경을 카메라가 잔인하게 오래 바라볼 때도 그랬고, 희수가 한심한 옛 남자친구를 따라 서울의 거리를 걸을 때도 그랬다. 단 하루, 혹은 며칠로 제한된 이야기의 여정을 보는 동안, 어느덧 우리 역시 ‘왜’가 더이상 궁금해지지 않는 순간에 당도한다. 그건 이윤기만의 장점이다.

하지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윤기의 특색이 구체적 삶보다 스타일에 가까워질 때의 함정들을 포괄한 인상을 준다. 마치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 먹을까, 라는 말투로 이별을 선언하는 아내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저 골똘히 침묵하는 남편. 이 아리따운 커플이 이 지경으로 오기까지 어떤 마음의 동요가 있었는지, 과연 이들의 결정은 번복될 수 있을지, 이미 그 어떤 파국의 드라마도, 가능성도 차단된 상태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온전히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나’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그건 결국 헤어져야 하는 최소의 당위, 이를테면 어찌할 수 없이 어긋나는 인물들의 욕망을 영화가 어떻게 충돌시키고 소통시키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흠집 하나 없는 우아한 집의 풍경 속에서 아름다운 배우들이 서로를 등지고 자기만의 동선으로 스칠 때, 이상하게도 이들은 유령 같다. 아내가 이별통보를 하던 도입부 승용차 장면의 끝에 교통사고가 생략된 건 아닐까, 지금 집 안을 떠다니는 이들은 죽음 이후의 영혼들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다. 욕망과 싸우지 않는 이별이란 세속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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