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허지웅의 극장뎐]
1968년, 찰턴 헤스턴의 입에서 터져나온 다음의 대사가 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며 동시에 에스에프영화의 전혀 새로운 어느 지점을 개척했다. “맙소사 돌아왔어. 내 고향이야. 여긴 지구였어. 정말 전쟁을 일으켰군. 이 미친놈들, 결국 지구를 날렸어! 저주한다! 모두 지옥으로 꺼져!” <혹성탈출> 시리즈는 반으로 조각난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1편 이외에도, 무려 5편까지 이어지며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여기에는 근본주의 개신교 신앙의 문제점과 핵의 위험성, 더불어 시간여행의 잔재미와 딜레마가 고루 포진해 있다.
<혹성탈출>은 테일러(찰턴 헤스턴)를 위시로 하는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떠난 지 1년 6개월 만에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면서 시작된다. 이론적으로는 이미 2천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다. 이 행성은 유인원(정확히 성직자 계급-오랑우탄, 군사 계급-고릴라, 평민 계급-침팬지)들이 지배하고 있으며 일부 잔존하는 미개 인간 종족은 유인원들에 의해 동물 취급을 받는다. 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주목받은 테일러는 유인원 코넬리우스, 지라 박사의 도움으로 유인원 사회를 탈출한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인간을 변호했던 그는 이 행성이 다름 아닌 핵전쟁 이후의 지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을 저주하며 절규한다.
<혹성탈출>의 원작은 프랑스의 고생물인류학자 피에르 불(<콰이강의 다리>의 원작자)이 쓴 소설이다. 그러나 영화와 내용이 꽤 다르므로 영화판을 오리지널 스토리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소설에서는 우주비행사 부부가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편지를 발견한다. 내용인즉, 어느 지구인이 유인원들의 행성에 불시착했는데 본래 이 행성의 주인이었던 인간이 과학의 발달로 퇴화해버리고 유인원들이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겨우 지구로 돌아가는 데 성공하지만 이미 지구 또한 과학의 지나친 발달로 인간이 퇴화해버리고 유인원들의 지배를 받고 있음에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우주비행사 부부는 이 편지를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긴다. 이 우주비행사 부부 또한 유인원이었던 것이다.
시리즈 가운데 가장 흥행에 성공한 <혹성탈출 2- 지하도시의 음모>는 테일러(찰턴 헤스턴)가 지하 세계에 남아 있는 인간들을 발견한다는 아이디어로 짜여 있다. 괴이한 모습으로 진화한 인간들은 신전에 핵폭탄을 모셔놓고 신으로 섬기고 있다. 결국 유인원 군대가 급습하고, 죽음을 목전에 둔 테일러는 핵폭탄 버튼을 누른다. 이후 지구는 은하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레이션이 흘러 나온다. <혹성탈출 3>은 코넬리우스, 지라 부부가 과거의 지구로 시간여행에 성공, 인간들에게 경고하지만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아들이 서커스단에 갇힌 채 후일을 도모한다는 내용이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시리즈는 이 아들이 본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다룬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겠지만 바로 이 아들 ‘시저’가 1편에서 유인원들이 모시는 시조 ‘위대한 유인원’이다.
<혹성탈출>의 유인원 사회는 빤하게도 인간 사회의 반영이고 변주다. 특히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유인원 사회의 오랑우탄 사제들이 한국의 개신교 사제들과 묘하게 닮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유인원을 만들었다. 진정한 과학은 종교를 거스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는 영화 속 오랑우탄의 말이나, 일본 지진이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목사들의 말이나, 더불어 공식 석상에서 무릎 끓고 통성기도 올리는 장로 대통령이나 근본주의 자장 안에서 오십보백보 같은 맥락이라는 말씀. 그러고 보니 영화 속 인간의 하나님이나 유인원들의 하나님이나 하다못해 핵폭탄을 숭배하는 인간들이나 기도의 마지막은 늘 한결같더라. 아멘. 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