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광주 총각·부산 처녀 ‘머나먼’ 결혼의 길

등록 2011-03-20 20:49

<위험한 상견례>
<위험한 상견례>
사투리 질펀한 코미디 ‘위험한 상견례’
<위험한 상견례>는 광주 총각과 부산 처녀의 생난리 혼담이다. 좋아 죽는다는 총각과 처녀가 결혼하는데 무슨 난리? 그들이 나고 자란 데가 전라도, 경상도요, 그들의 부모가 나고 자란 데가 전라도, 경상도요, 그들의 부모의 부모가 나고 자란 데가 전라도, 경상도이기 때문이다.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게 도대체 뭐기에?

때는 1980년대 말. 순정만화 작가 현준(송새벽)과 피아노학원 강사 다홍(이시영)은 펜팔로 알콩달콩 사랑을 키운다. 글말인 편지는 사투리가 배어들 여지가 적은 법. 설령 있다해도 말랑말랑한 청춘남녀한테 대수랴.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데…. 실제 얼굴을 맞대자 흐미, 콩깍지에 불까지 붙어 버린다.

문제는 부모. 다홍의 아비(백윤식)는 “여자는 스물다섯 넘으모 똥값 된다”며 딸을 맞선시장으로 내몰고 현준의 아비(김응수)는 “일단 나가 그짝 집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올 것잉게…”라는 아들한테 “부자 인연을 끊으라”고 윽박지른다. 현준은 단기필마로 적지인 부산으로 향하지만 처녀의 아비는 출신지를 눙치는 사윗감 앞에서 “전라도만 아이모 된다”는 아주 관대하지만 치명적인 조건을 내세운다. 그러니 영화는 코미디일 수밖에.

밀고당기는 결혼 이야기는 자칫 스토리가 뻔하고 단순해질 수 있다. 그러나 광주 총각의 부산행과 부산 처녀의 광주행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에다 지역색의 차이를 대비시키면서 풍부해진다.

부산 야구구장은 롯데 팬 일색에다 응원가도 ‘부산 갈매기’다. 구멍가게서는 해태껌을 팔지 않고, 꿈속에 광주 시내를 걷는 건 악몽이라고들 한다. “저 사람은 전라도 사람이야”의 줄임말은 “저놈은 전라도여!”이고 그것은 욕이다. 광주 사정도 피장파장. 가수가 나이트클럽에서 부산인 줄 알고 부산 사투리 서비스를 했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줄행랑친다.

영화의 중심은 송새벽. <마더>(2009) <방자전>(2010)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에서 예의 억울한 표정에다 어눌한 전라도 사투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가 첫 주연을 맡아 서울 말씨로 위장한 광주 총각으로 나오니 알 만하지 않은가.

여기에 새침데기 복싱배우 이시영이 콧소리로 “오빠야!”를 연발하면서 영화는 팔보채처럼 상큼·알싸한 분위기다. 백윤식, 김수미, 김응수, 박철민, 김정난, 정성화가 걸쭉한 입담으로 드레싱 양념을 치면서 입맛을 돋운다.

주인공은 배우들보다 사투리라는 편이 옳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투리가 질펀하다. 송새벽의 고치고 고친 말투엔 호남 사투리가 여전하고, 이시영은 리시버를 끼고 부득부득 영남 사투리를 배웠다. 김진영 감독, 김수미, 박철민 모두 호남 출신들로 촬영 현장에서 백윤식만 왕따였다고 할 정도. 사투리는 부산 해산물, 벌교 톳죽 등 토속음식과 최종 궁합을 맞춘다.


영화는 ‘때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철벽같던 ‘때문’이 왜 무너지는지에 답도 않는다. 물론 정색하면 코미디가 아니지~. 다만 순정만화, 서정윤의 시 ‘홀로서기’ 등을 함께 즐기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서 은인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출신지에 대한 물음이 사라지는 점에서 지역감정은 허울임을 시사할 뿐이다. 누가 장소를 골라 태어나고 누가 그러고 싶어 사투리를 쓰고 누가 다른 입맛을 부러 길들이는가. 또 그게 왜 문제란 말인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선입견일 뿐.

핸드폰 없던 80년대 풍속도는 디저트.

고참의 이름 ‘은석’을 ‘언석’이라고 발음해 얼차려를 받는 ‘갱상도’ 쫄병, 수프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동까스’ 경양식집, ‘리퀘스트 곡’을 틀어주는 디제이 다방, 독수리 카세트 음악에 서정윤의 ‘홀로서기’를 읊조리는 별밤, 열시 땡 시간 정해놓고 전화하기, 자야, 홍아 이름 끝자로 그대 이름 부르기, 그리고 출범 초기 프로야구의 엄청난 열기 등 80년대 풍경이 고색창연하다. 그러고 보니 2011년도 석달이 다 가네. 31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