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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전쟁 선포가 박수 받을 일인가

등록 2011-03-27 20:48

킹스 스피치
킹스 스피치
[남다은의 환등상자] 킹스 스피치

좋은 연설이란 무엇일까. 아니, 좋은 연설의 효용은 무엇일까. 연설의 당사자에게 그것은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확고히 세우는 존재 방식이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설득의 수사를 동원하고 있으나, 실은 강력하고 일방적인 선언. 대중들에게 그것은 대개의 경우, 집단적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실은 그런 환상을 안겨주는 초자아의 언어다. 말하자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듣는지, 즉 내용의 윤리보다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연설의 이미지 혹은 제스처가 자아내는 정서적 효과다. 대중을 현혹시키든, 감동시키든, 호소하든, 위로하든, 어찌 되었든 믿게 만드는 일이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의무를 앞선다. 그러니 연설 앞에 ‘좋은’이라는 수사를 붙이는 건 옳지 않다. 한 사람의 말로 수천만명을 움직일 수 있는, 좀 나쁘게 말해 수천만명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연설 앞에는 ‘효율적인’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적절하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쓴 <킹스 스피치>는 말을 더듬는 왕자가 왕위에 올라 제대로 연설을 해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사람의 입보다도 몇 배나 거대한 마이크 형상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조지 5세의 소심한 둘째 아들 앨버트(콜린 퍼스)가 마치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에 주눅 든 아이처럼 마이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도입부에서 이미 우리는 그의 증상이 아버지의 권위, 형에 대한 경쟁심, 상처 입은 어린 시절 따위에서 비롯된 억압된 무의식과 연결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그 상투적인 짐작은 결국 대부분 맞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 그 앞에 말투를 만지기 전에 마음을 먼저 만져야 한다고 믿는 언어치료사 라이어넬 로그(제프리 러시)가 나타나 치료를 돕는다.

그런데 영화의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마지막 대국민담화 장면이 편집된 방식을 보고 나면,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호의에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어진다. 그가 얼마나 완성된 발음으로 연설을 완벽히 마치는지에 골몰하는 영화는 그 연설문이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참전 결정을 선포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거나 망각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베토벤 교향곡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왕이 연설을 무사히 끝내자마자, 그걸 듣던 관료들과 가족들이 그를 둘러싸고 환호를 터뜨리는 모습을 영화는 우아하게 오간다. 아무리 장애를 극복한 왕 개인의 드라마가 중요하다 해도, 국민의 목숨이 걸린 전쟁을 선포하는 장면들이 이토록 성취감, 만족스러움, 대견함과 같은 자아도취의 향연으로 연결되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조지 6세에 대한 국민들의 실제 평판과는 별개로 이 후반부를 채우는 영웅 탄생의 신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고 뻔뻔하다. 하긴 생각해보니 그는 앞선 장면에서 히틀러의 영상을 보다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말은 청산유수구나”라며 부러움에 넋을 놓은 적이 있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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