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째 영화 ‘나는 아빠다’ 출연 임하룡
15번째 영화 ‘나는 아빠다’ 출연 임하룡
환갑 맞은 나이에도 ‘충무로 만능배우’ 맹활약
살인자 쫓는 수사관역…“노년 멜로도 하고파”
환갑 맞은 나이에도 ‘충무로 만능배우’ 맹활약
살인자 쫓는 수사관역…“노년 멜로도 하고파”
밥풀떼기, 물방개, 마른장작 같은 어리숙한 조직원을 거느렸던 ‘쉰옥수수’는 예순의 나이가 됐다. 3살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됐지만,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은 그의 모습에선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던 ‘젊은 오빠’의 기운이 배어나온다. 최근엔 허각이 부른 ‘하늘을 달리다’를 배웠다는데, “노래방에서 소리지르는 재미가 좋다”며 짙은 검은색 머리칼을 경쾌하게 쓸어넘긴다.
“손녀에게 잘 보이려면 젊어 보여야 하니까…. 올해 여든이신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흰머리도 나지 않아요. 염색도 한번 안 한걸요?”
7일 밤 서울 시내 술집에서 만난 그는 앞에 놓인 맥주잔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연기를 계속할 수 있어서, 그래서 참 즐겁고 행복해요.”
요즘 코미디를 하는 임하룡을 텔레비전에서 더는 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는 충무로가 주목하는 영화배우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영화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한 2002년 <묻지마 패밀리> 이후 찍은 작품만도 14편. 매년 최소 1~2편의 영화에 ‘모셔지는’ 몸이 된 것이다.
이번엔 14일 개봉하는 <나는 아빠다>(감독 전만배·이세영·아래 사진)에서 핵심 조연으로 15번째 영화에 이름을 올린다. 퇴물 취급을 받지만 살인사건의 진실을 유일하게 추적해가는 고참 ‘김 형사’ 역이다. 1976년 극단 ‘가교’에서 뮤지컬 <포기와 베스>로 기성극 데뷔를 할 때 형사를 했으니, 35년 만에 다시 형사 역을 맡게 된 셈이다. 그는 심장이식이 필요한 딸을 살리기 위해 악행도 서슴지 않는 ‘나쁜 아빠’ 한종식(김승우) 형사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뒤 복수를 노리는 마술사 나상만(손병호)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에 숨통을 터주는 인간적인 형사로 나온다.
그러고 보면 임하룡에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안긴 <웰컴 투 동막골>의 늙은 인민군,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여성대통령 남편 등 그의 몸에 스며든 배역들은 한결같이 친근하면서도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들이다. 막내의 고교 졸업 때까지 형사를 그만둘 수 없다는 <나는 아빠다>의 김 형사도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코미디 할 때는 악당 보스같이 카리스마가 풍기는 역할을 했는데, 영화감독들이 저의 얼굴과 분위기에서 애잔한 서민적 모습이 엿보인다고 하네요.”
원래 그는 영화배우를 꿈꾸며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집안형편 탓에 대학을 중퇴하고, 부친이 고혈압으로 오래 투병하다 47살에 눈을 감으면서 야간업소 보조진행자 등의 일을 하게 됐다. 5형제 중 장남이었던 그는 “혈압약도 못 드시고 누워만 계시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너무 죄송했다”며 가족 생계를 위해 험한 일을 기꺼이 짊어졌다. 개그맨 전유성이 연예부장으로 있던 서울 무교동 통기타 살롱 ‘꽃잎’에서 군대에 간 개그맨 김학래를 대신해 사회를 보다가 입소문이 나면서 81년부터 방송 코미디언의 길에 들어섰다. 그 뒤 ‘영구’ 심형래, ‘밥풀떼기’ 김정식 등과 함께 코미디 전성시대를 열었지만, 90년대 후반 콩트 코미디의 퇴조는 그가 설 자리도 점점 줄어들게 만들었다.
“97년에 <뽀뽀뽀> 뽀미언니 아빠로도 출연했는데, 나중에 새로 바뀐 피디가 개미나 메뚜기 탈도 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쑥스러워서 그건 못 하겠더라고.”
이후 그는 “젊은 개그맨 중심으로 꾸려 가고 싶다”는 제작진의 통고를 받은 뒤 1999년 말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을 끝으로 방송 코미디 무대를 내려왔다. “내가 떠날 수밖에 없는 조짐이 보였고,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오히려 코미디 프로그램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선배로서의 책임을 더 통감했어요.”
연극 제작을 고민하다 만난 장진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이제 개그맨 후배들이 부러워하는 제2의 배우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옛 후배들과 콩트도 다시 하고 싶지만 사실 예전만큼 못 웃길 것 같아서…. 이순재 선생님처럼 노년에 주연 기회가 오면 좋겠지만, 한 장면에 나와도 빛을 발한다면 그 역할이 결코 왜소한 것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죠.”
그러면서 그는 “노년의 사랑 연기, 멜로 연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며 슬쩍 웃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 ‘일주일만 젊었어도’라던 자신의 유행어와 달리 희극배우 임하룡은 손녀를 둔 나이에 충무로에서 화려한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이노기획 제공
<나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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