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셰티>
[허지웅의 극장뎐]
할리우드라는 이름의 강호에 정파와 사파, 그리고 쓰리디파가 뒤섞여 흉흉한 가운데, 오로지 얼굴 만으로 강을 마르게 하고 이 산을 저 산으로 옮기며 한 밤 중에 해를 띄우는 무소속 고수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대니 트레조다. 1985년 <폭주 기관차>로 데뷔한 이래 무려 209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형님’께서는 그의 육촌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 중이다. 여기 그의 최신작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주연이다. <마셰티>다.
충분히 알려졌듯 <마셰티>의 출발은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라인드 하우스>(<플래닛 테러>와 <데스 프루프>)에 삽입된 가짜 예고편이었다. 대니 트레조가 마셰티(<스파이 키드>에서 트레조가 맡은 배역 이름)로 등장하는 이 가짜 예고편은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마셰티>와 함께 인기몰이에 성공한 <추수감사절>도 현재 일라이 로스에 의해 장편 영화화 중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요 걸 장편으로 만들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대니 트레조는 그에게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마셰티>의 영화화를 촉구했다. 짜증이 난 로드리게즈가 물었다. “대체 왜 문자를 안하고 전화를 하는 거야.” 트레조가 답했다. “마셰티는 문자 안한다.” 듣는 것만으로 내상을 입을 듯한 이 육중한 대답은 영화 속에 포함됐다.
<마셰티>는 <그라인드 하우스>에 삽입된 가짜 예고편이 그랬듯 인위적으로 조작된 싸구려 영화다. 로버트 드니로, 제시카 알바, 린제이 로한, 미쉘 로드리게즈, 그리고 하느님 맙소사, 스티븐 시걸이 동원된 이 영화는 정글숲을 가르는 마셰티 칼의 박력으로 관객의 두 눈과 심장을 파고든다(스티븐 시걸이 온전한 악역으로 등장한 건 이 영화가 최초다). 사실 여기에 척 노리스까지 합류했다면 신화가 될 그림이었겠으나, 아무래도 <마셰티>의 플롯은 골수 공화당 지지자인 척 노리스에게 맞지 않는다. <마셰티>는 멕시코 출신 이주자들이 그들의 영웅 마셰티와 함께 보수 ‘꼴통’ 미 상원의원과 남미 마약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상원의원의 재선을 위해 가짜 저격사건이 조작되는데, 여기 한 때 멕시코의 전설이었던 남자 마셰티가 참여하게 된다. 곧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은 마셰티는 피와 살과 뼈가 분리되는 죽음의 복수를 계획한다.
영화는 일부러 조악하게 후처리한 화면들과, 실제 데드 픽셀이 빤히 보이는 카메라 촬영분, 그리고 앞 뒤 컷이 전혀, 그러니까 흡사 학생의 시체를 넘고 넘어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총장의 양심마냥 도무지 이어볼래야 이어볼 수 없는 맥락의 이미지들을 뒤죽박죽 섞어놓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황혼에서 새벽까지> 시리즈 세 편 모두에 출연했던 유일한 배우인! 무려 7년 동안 실제 감옥에서 복역한 이후 개과천선해 성공적인 배우의 삶을 가꾸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대니 트레조가 있다. 대체 어느 누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나. 이 영화의 뻔뻔스러운 엉성함과 신체 훼손의 과격한 강도가 스크린 위를 무심한 듯 ‘시크하게’ 가로지르는 동안, 대니 트레조의 지구를 삼킬듯 깊고 너른 주름살들은 개미지옥처럼 관객을 콱 거머쥐어 끝이 날 때까지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키치적인 즐거움이 아닐까 망설이는 관객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왜 고민했을까 싶어 하하 웃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막장에 대해 대체 뭘 안단 말인가. 적어도 <마셰티>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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