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책장에서 먼지를 덮고 있던 옛 소설들이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인다. 1847년 출간된 영국 여성작가 샬럿 브론테(1816~1855)의 <제인 에어>와 1987년 발간돼 전세계 36개국에서 1100만부가 팔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2)의 출세작 <상실의 시대>가 각각 20일과 21일에 개봉된다.
<제인 에어>는 부모를 잃은 제인 에어가 기숙학교를 졸업한 뒤 로체스터 가문의 개인교사로 들어가 집주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왔던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주눅들지 않고 당찬,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밀려오는 이 사랑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하는 심경을 눈빛에 모두 담아냈다. 로체스터 역의 마이클 파스벤더도 제인 에어를 향해 매력적인 사랑의 대사들을 뱉어낸다. 로체스터가에서 집안일을 돌보며 제인 에어를 돕는 페어팩스 역의 영국 배우 주디 덴치의 능청스런 연기도 볼만하다. 이번 영화는 <제인 에어>가 22번째 영상화되는 작품이다. 그간 영화 중 가장 원작에 충실하다는 평이다.
<상실의 시대>는 <씨클로>란 영화로 1995년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받은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 트란안훙(쩐아인훙)이 2005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를 설득해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 등 격변의 시대상과 어울리지 못한 일본 청춘들이 겪는 상실의 아픔이 관능적이면서도 감미롭게 표현된 소설에 매료됐다고 한다.
영화는 와타나베(마쓰야마 겐이치)가 고교 시절 친구 기즈키를 자살로 잃은 뒤 대학에 들어가 정신적 혼돈에 빠진 기즈키의 연인 나오코(기쿠치 린코)와 생기발랄한 미도리(미즈하라 기코) 사이에서 방황하며 부유하는 내면을 포착하고 있다. 와타나베 역의 마쓰야마 겐이치의 얼굴 표정엔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헷갈려하는 스무살 한 청춘의 자화상이 그대로 스쳐 지나간다. 영상시인 감독의 작품답게 짙은 녹색의 초원과 잿빛 음악카페의 색감 등이 화면에 투영돼 있다. 또 소설 원제목과 같은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 리메이크 버전이 아닌 원곡으로 울려나온다. 하지만 누군가는 밤새워 읽었던 원작의 두근거림이 그리울 수 있고, 또는 깊은 허무와 불안에 빠진 청춘 남녀들이 서로의 몸에 탐닉하는 내용에 섞이지 못하고 극장을 나설 수도 있다. 송호진 기자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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