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비탄의 역사가 펄떡였다
[남다은의 환등상자] <오월애>
5·18 민주화 운동이 국가가 호명하는 기념일이 되고, ‘정부’의 ‘공식’ 행사가 된다는 건, 지워지고 억압되었던 역사의 복권을 의미할까. 그때, 복권의 주체는 누구이고, 복권의 내용은 무엇일까. 텔레비전을 통해 매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정치인들을 지켜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저들은 지금 무엇을 추모하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저 텅 빈 상징적 행위, 혹은 추상적이고 거대한 단어들이 5월 광주의 구체적인 삶 속으로 얼마나 들어올 수 있을까. 김태일 감독의 <오월애>는 위의 정치인들도, 뒤늦게라도 역사에 이름을 올린 자들도 아닌, 그때 그곳에 있었고,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 이곳에도 존재하지만 역사적 기록에서 삭제된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5·18을 기념하는 자들이 아니라, 도저히 기념할 수 없는, 5·18의 기억이 자신의 존재 자체이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지난 30여년은 어떻게 흘러가서, 지금은 무엇과, 누구와 싸우고 있을까.
영화에 비친 이들의 현실에는 그 어떤 영광의 흔적도 없다. 그들은 그 날의 기억을 붙들어야만 살 수 있으나 그 기억 때문에 평생 아프다. 살아남은 자들은 동료들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죄의식으로 우울증과 싸우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책임감에 가난과 싸운다. 혹은 이제 그들은 그토록 끈끈하던 공동체가 반목으로 부서져버리는 광경과도 싸워야 한다. 작은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며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던 다부진 남자가 인터뷰 말미에 몇 십 알의 약을 털어 넣을 때, 5·18 묘역 앞에서 꽃집을 하는 목발을 짚은 남자가 이곳이 고향보다 더 편하다고 말할 때, 당시 시민군의 시체를 부모들에게 확인시켜주던 남자가 아직도 눈을 감으면 죽은 이들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른다고 할 때, 머리보다도 먼저 몸이 역사를 기억하는 자들의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런데 당시 시민군이었던 남자들의 눈물겨운 인터뷰보다 더 인상적인 순간은 시민군들에게 밥을 퍼다 나르던 시장 여인들, 지금도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아줌마들이 걸걸한 목소리로 그때의 기억을 말할 때다. 혹은 시민군 남편을 두었으나 정작 본인은 그 사실도 뒤늦게 알았고, 그런 남편 때문에 생업에 뛰어든 여인이 억세고 어딘지 진심이 담긴 말투로 ‘다시 태어나면 이 남자와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며 깔깔거릴 때다. 어쩌면 이들은 잊혀진 시민군들보다도 더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이지만, 역사 안에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할 생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씩씩하게 생존해왔다. 이 여인들의 육체에 강렬하게 새겨진 고단한 노동의 흔적과 생의 의지는 그날의 트라우마를 압도한다. 신기하게도 여기에 이 영화의 활력이 있으며, 비탄에 잠겨 박제되어가던 역사도 지난 30여년의 세월을 뚫고 온 이들의 육체 앞에서만큼은 다시 팔딱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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