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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허지웅에 극장뎐] 써니에 대한 변명

등록 2011-05-15 21:12

 <써니>
<써니>
<써니>는 오지랖이 큰 영화다. 주변 사람들의 역사를 연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고 쉬워서 그에게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으리라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 이를테면 엄마처럼 말이다. 그녀가 알에서 나온 것도 아닐 텐데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그냥 엄마, 정도로 어렴풋하고 성의 없이 대충 생각하게 된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만난 엄마는 <써니>를 보고 매우 좋아했다. 영화 속에서 “우리들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대사를 들으며 울컥했다고 한다. 나는 사실 영화보다도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 더 울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주변에서 <써니>가 불편했다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강형철의 신작이 말끔하게 잘 나온 대중영화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몇가지 부분에서 이견이 드러난다. 우선 영화 전반에, 특히 학창시절을 다루는 동안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이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어 자주 설득력을 잃어버린다는 것. 둘째는 80년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 서슬 퍼런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없고, 심지어 그 자체를 희화화해버리는 대목들이 자주 등장해 불쾌했다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영화의 결말인 ‘선물’ 시퀀스도 너무 편하고 기만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 모두 이해할 만한 의견들인데, 이 영화를 큰 무리 없이 즐긴 한 사람으로서 어찌 됐든 두어가지 정도 보탤 이야기가 있다.

우선 첫번째 지적부터. <써니>의 화법 자체는 무척 익숙한 것으로, 청소년기의 추억을 신화화하는 영화들의 틀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따지자면 추억류 남성 판타지를 조롱하고 비웃었던 <품행제로>의 반대편에서, <친구>의 방식으로 여성 판타지를 구축한다. <써니>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이 <친구>와 다른 점은 후자에서 병풍에 불과했던 여성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사실뿐이다. <써니>는 지금 이 시간을 살아나가고 있는 인물들이 우연히 만나 과거 어느 시점에 함께 공유했던 짧은 사건을 신화화하고, 거기에 특별한 가치를 덧씌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구조 안에서 다소간의 과잉된 에너지가 극을 지배하게 되는 건 막무가내식 설정이라기보다 자연스런 일이라 할 만하다.

두번째 지적에 관련해서는 대표적으로 ‘터치 바이 터치’ 시퀀스를 들 수 있겠다. 신군부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대와 주인공들이 뒤엉켜 집단 군무를 추듯 난장을 형성하는 이 장면은 ‘사실’보다는 ‘유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주인공의 남편이나 오빠가 과거에 운동권이었다가 지금은 성공한 자본가, 혹은 실패한 자본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대목 등과 더불어 <써니>는 386 세대의 어떤 전형성에 대해 확실히 냉소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결말의 ‘선물’ 시퀀스에 이르러 일부 관객들에게 뚜렷한 보수 이데올로기로 비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영화를 진보 보수의 틀에서 재구성하는 게 옳은 방식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그보다 <써니>는 몰락한 중산층을 바라보는 공감 어린 시선에서 동력을 얻는 영화다. 과거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그랬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관계없이 느슨하고 심정적인 인식 아래서 ‘중산층’이었다. <써니>의 결말은 과거의 신화적인 역동성으로부터 멀어져 관성 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몰락한 중산층’의 물리적인 부활을 그리고 있으며, 이는 기만적일지라도 관객에게 위안과 해소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극장을 나서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도 친구 잘 만나 중산층 되고 싶다”였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인상이 영화 본연의 낙천적인 에너지 자체를 폄하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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