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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정글 같은 세상, 징글맞네

등록 2011-05-29 20:45

1980년대 소년 성장기 ‘굿바이보이’
백골단·불량배 등 ‘시대폭력’ 묘사
늘 노는 아빠(안내상)는 4년마다 마법에 걸린다. 총선 때만 되면 민정당 선거운동원으로 기웃거리며 자리 하나 구걸해보려는 백수다. 엄마(김소희)는 애들을 위해 립스틱 찍어 바르고 술집까지 나서지만, 저 개떡같은 인생인 남편을 차마 떨쳐내지는 못한다. 누나(류현경)는 동생에게 말끝마다 ‘니네 아빠’라 토를 달 만큼 가족이, 이 동네가 징글맞다. <굿바이 보이>(6월2일 개봉)는 이 속에서 사는 중학생 진우(연준석)가 1980년대 말의 시대를 통과하며 세상에 눈뜨는 성장기를 다룬다.

진우는 ‘동양신문’을 배달하는 창근(김동영)을 만나 신문을 돌리면서 담배와 술을 입에 대고, 창근의 말마따나 거칠고 폭력적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장글(정글) 같은 세상”을 접하게 된다. 지네 아빠 ‘빽’ 믿고 거들먹거리는 동네 불량배의 주먹도, 사람 잡는 ‘백골단’의 몽둥이도, 자기를 거들떠도 안 보는 ‘그 소녀’의 냉랭함까지도 소년에겐 폭력적이다. “똥개는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증명하듯 집 나간 아빠는 돌아와 그만의 화해를 시도하지만, 여전히 딸에겐 ‘니네 아빠’일 뿐.

3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써니>에서 1980년대의 시대적 공기가 여고 시절의 유쾌한 추억에 밀려 있다면, <굿바이 보이>에서는 어린 진우의 삶 구석구석까지 스며들 수밖에 없는 당시의 시대적 공기를 영화 속에서 살아 숨쉬게 했다. 신문배급소장에게 야구방망이로 얻어맞는 진우는 소장에게 대들며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반격을 시도하는데, 옆방 대학생 누나를 막다른 골목에서 피 터지게 때린 ‘백골단’의 환영이 소장에게 겹치는 것을 목도하고 나서다.

진우의 내레이션은 ‘위트’의 양념이 섞여 있어 영화가 늘어지는 고비마다 빠져나오고, 배우들의 호연도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와 송일곤 감독의 조감독을 거친 노홍진 감독은 ‘장편 데뷔작’에서 당시의 시대를 무겁거나 투박하지 않게 풀어내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날 무렵, “진우야, 진우야”를 외치며 가지 말라는 친구의 울부짖음에 선글라스를 끼고 “꺼져 이 새끼야”라고 읊조리는 진우의 대사는 80년대 말의 정글 같은 시대와의 이별을 고하는 말로도 들린다. 욕설이 귀에 거슬릴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이런 영화가 대형 상업영화에 밀려 전국 13개 상영관에서만 일단 개봉을 시작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개 같은 인생>이란 제목으로 상영돼 호평을 받은 영화다. 송호진 기자,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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