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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2배 괴로운 인생들의 ‘역설적 웃음’

등록 2011-05-29 20:46

다큐영화의 본령이란 무엇인가! 따위 말로 이 글을 열어봤자 아무도 읽지 않으려 할 테니 생략하고. 사람들은 종종 다큐영화가 건조할 정도로 바짝 마른 객관적 진실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풍경은 카메라 렌즈를 통과하는 순간 더 이상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주어진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배열하는 연출자의 의도는 어떤 방식으로든 중력처럼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의도가 읽히지 않는 다큐는 오히려 못 만든 다큐다.

여기서 하나의 긴장이 발생한다. 연출자의 의도와 카메라에 포착된 개인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말이다. 좋은 영혼을 가진 다큐영화는 그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실제, 우리가 한 편의 다큐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건은 바로 그 긴장과 맞닥뜨리는 순간에 벌어진다.

<종로의 기적>은 네 명의 게이 남성을 다루는 다큐영화다. 스태프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아 고민하는 소심한 영화감독 준문, 광장을 누비고 다니는 인권운동가 병권,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을 경영하며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영수, 그리고 애인과의 사랑을 통해 자기 확신을 얻고 삶의 방향성을 확인하게 되는 사무직 노동자 율, 이 네 사람이 주인공이다. 영화를 연출한 이혁상 감독의 카메라는 그들의 일상을 하나씩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이와 같은 소재의 다큐영화를 풀어 나가기 위해 연출자가 선택할 수 있는 쉬운 길이 몇가지 있다. 가장 쉬운 건 주인공들의 고생담을 담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고생담에는 다큐 연출자가 욕심낼 만한 드라마가 존재한다. 이에 집중했다면 <종로의 기적>은 네 명의 게이 남성이 자기 회고담으로 경쟁하는 고생 올림픽이 되었을 거고, 운이 좋다면 소녀 관객 한두 명의 눈물을 빼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역경과 고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종로의 기적>은 카메라 너머 인물들의 눈물보다,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바보같이 활짝 웃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할 때 빛을 발하는 다큐다. <종로의 기적>은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남들보다 곱절의 근성과 용기가 요구되는 사람들을 다룬다. 흡사 나무가 나무라서 미안합니다, 개미가 개미라서 미안합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이 영화의 예고편은 게이 커플이 ‘체위’라고 말하는 대사와 장면을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서 반려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영화에서 발견하게 되는 주된 정서는 매우 보편적인 층위의 웃음과 즐거움이다. 이 괴리감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삶을 주어진 것으로서가 아닌, 주장하고 가꾸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라 체득한 사람들의 웃음은 이렇게 강렬하다. 역설적인 노릇이지만 바로 이 웃음이, 보는 이들을 하나하나 사로잡아 눈물 흘리게 만든다. 이 다큐영화의 긴장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들이 웃을 때 우리는 울고, 영화와 사랑에 빠진다.

아쉽지만 종로라는 공간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획 의도처럼 네 사람 인생의 공통분모로, 낙원으로 존재하는 종로의 공간적인 감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원인으로 연출 차원에서 흠결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굳이 사람들의 사연을 공간으로 묶으려 하지 않고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는 점에서 감독 특유의 우직함이 느껴진다. 그게 이혁상 연출의 개성일 것이다.

영수가 운영했던 식당은 예전 회사와 가까워 자주 이용했던 곳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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