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은의 환등상자
[남다은의 환등상자]<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김곡, 김선 감독이 걸그룹 티아라의 함은정이 주인공인 아이돌 호러물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 조합은 어딘지 이상해 보였다. 기존의 영화적 관습에 저항하는 작품들로 관객을 놀라게 하던 이 쌍둥이 감독들이 철저히 상업적이고 익숙한 장르 안에서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그들의 전작, 이를테면 <고갈>이나 <방독피>가 주던 충격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이들의 선택은 의아한 한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면 아이돌 가수 출신의 배우가 출연한 영화들은 많았어도, 아이돌의 삶을 다룬 이야기를 영화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것도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가 아이돌의 화려함에 감춰진 처절함과 비천함을, 나아가 아이돌의 비극적인 죽음을 체현하는 아이러니라니. “아이돌은 어떻게 죽어야 가장 아이돌답나, 아이돌의 무덤은 어디인가, 아이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나.” 언젠가 촬영 현장에서 만난 김곡, 김선 감독은 이런 질문을 안고 <화이트>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실 이들이 다루고 싶어하는 아이돌의 모습은 그들이 줄곧 재현해왔던 금수 같은 인간들, 혹은 마리오네트와 어딘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자본의 한가운데 던져져 철저히 껍데기로 세계를 견디는 운명.
우선 <화이트>의 간단한 줄거리. 걸그룹 ‘핑크돌즈’는 네명의 여성 멤버 은주(함은정), 신지(메이다니), 제니(진세연), 아랑(최아라)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그룹에 비해 확연히 인기가 뒤처진 핑크돌즈. 백댄서 출신으로 나이가 가장 많은 은주는 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멤버들 사이에서는 메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진다. 그러던 중 은주는 새롭게 옮긴 연습실에서 ‘화이트’라는 라벨이 붙은 정체불명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그 안에 녹음된 노래와 안무를 변주해 신곡을 발표하자, 핑크돌즈를 향한 대중들의 관심은 뜨거워지는데, 이때부터 ‘화이트’의 저주가 시작된다. 멤버들이 하나씩 불분명한 이유로 끔찍하게 사고를 당한 뒤, 결국 혼자 남은 은주는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예감하고 ‘화이트’에 얽힌 비밀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진짜 공포는 귀신이 깜짝 등장할 때가 아니라 성형중독, 성상납, 기획사의 폭력, 비뚤어진 경쟁의식 속에서 아리따운 소녀들이 기괴하게 미쳐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나온다. 영화가 그리는 아이돌의 현실이, 그들이 목격하는 원혼보다 더 무섭다. 혹은 점차 괴이한 욕망으로 일그러지는 이들의 얼굴이 피 흘리는 유령의 얼굴보다 더 끔찍하다. 아이돌의 세계는 이미 그 자체로 끈적끈적한 공포 영화다. 어차피 대중들이야 언제나 아이돌의 빛과 어둠 모두를 쾌락의 대상으로 삼아 왔으니, 이 영화를 그저 독특한 소재의 장르 영화로 감상하겠지만, 정작 아이돌 스타들은 어떨까. 여자 아이돌들은 이 영화의 자기 반영성을 슬픔과 분노 없이 그저 즐길 수 있을까. 이들의 솔직한 감상문을 읽어보고 싶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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