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보안사 내부고발 바탕 ‘모비딕’
민간인사찰·막후 권력 등 문제 담아
민간인사찰·막후 권력 등 문제 담아
당신이 음모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뭔가가 있다’란 의심에 귀가 솔깃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세상을 들썩이게 해 놓고도 실체가 불분명한 사건이라면, 그 이면에 미처 말해지지 않은 ‘무엇’이 있을 거란 추측은 상식적인 귀결일 테다. 의심하는 쪽과 ‘사회적인 분열과 혼란을 조장한다’며 의심을 차단하는 쪽의 대립을 우리는 자주 봐 왔다. 영화 <모비딕>은 의문의 폭발 사고가 남긴 의심스런 ‘그 무엇’을 파헤치는 신문사 기자들을 다룬 영화다.
<모비딕>은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을 모티브로 삼아, 의문투성이 폭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기자들의 노력을 그린다. 호출기, 공중전화, 플로피 디스켓 등을 쓰던 90년대 중반이 배경이다. 1994년 11월20일 경기도 발암교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용의자도 사상자도 오리무중인 이상한 사건이다. ‘간첩에 의한 테러’라는 말이 슬금슬금 흘러나온다. 사건을 취재하던 명인일보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 앞에 고향 후배 윤혁(진구)이 나타나 발암교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이방우는 윤혁이 건넨 자료들을 근거로 동료 기자 손진기(김상호), 성효관(김민희)과 특별취재반을 꾸린다.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사건 조작의 주체인 ‘정부 위의 정부’ 세력은 기자들을 도청하고 미행하고 급기야 생명까지 위협하면서 취재를 방해한다.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서의 긴장감이 영화 내내 ‘적당히’ 유지되는 까닭에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간간이 등장하는 유머는 심각한 분위기를 적소에서 환기시킨다. 민간인 사찰, 양심선언, 배후 권력 같은 소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세우면서도 장르 영화의 흐름을 충실하게 타고 있기에 관객은 부담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다만 영화에서 윤혁의 캐릭터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무게중심이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에 놓여 있다 보니 정작 진실을 알릴 열쇠를 가진 윤혁의 복잡한 심경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2003년 단편 <여기가 끝이다>로 제2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박인제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지난해 영화 <부당거래>에서 출세를 위해 사건을 조작하는 형사 역을 맡았던 황정민이 이번에는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로 변신했다. 9일 개봉.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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