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림>
허지웅의 극장뎐
1996년은 <스크림>의 해였다. 공포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랬다. ‘미성년자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이유로 영화의 국내 개봉이 불발되자 불같은 성토가 이어졌다. ‘비디오떼끄’라는 이름으로 암암리에 운영되던 불법복사 테이프 대여점에는 <스크림>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피시통신 게시판에는 <스크림>에 관련된 텍스트가 넘쳐흘렀다. 웨스 크레이븐과 케빈 윌리엄슨은 영웅이 되었다. 이미 <뉴 나이트메어>로 자신이 만들어낸(최소한 그 탄생에 기여한) 장르를 종합하고 전복하는 매력을 보여주었던 웨스 크레이븐은 <스크림>으로 슬래셔 장르(할로윈으로 대표되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를 통째로 뒤집어 흔들며 그 판세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하루아침에 할리우드의 천재 작가로 거듭난 신예 케빈 윌리엄슨은 이듬해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로 다시 한번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나 <스크림>은 곧 가장 빨리 잊혀진 신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웨스 크레이븐과 케빈 윌리엄슨이 다시 뭉친 속편은 훌륭한 오프닝 시퀀스를 빼면 다소 김이 샌 모양새였다. 2000년에 개봉한 <스크림 3>은 이 시리즈에 가장 열광적인 관객들마저 냉소하게 만들었다. <스크림>이라는 이름의 전설은 <무서운 영화> 등의 코미디물로 변주되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지금 여기 <스크림 4G>(괴상한 한국식 작명인데, 원제는 그냥 ‘스크림 4’다)가 도착했다. 11년 만의 속편이다. 웨스 크레이븐이 연출하고 케빈 윌리엄슨이 썼다. 네브 캠벨이 그대로 시드니를 연기하고 이미 현실에선 결혼과 이혼을 거쳐 남남이 되어버린 코트니 콕스와 데이비드 아퀘트가 각각 게일과 드웨이로 돌아왔다. 사실 향수 정도를 빼면 이 뒤늦게 도착한 프랜차이즈의 최신작을 긍정적으로 예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크림 4G>는 꽤 볼만한 속편이다!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시드니가 고향 우즈보로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우연찮게도 그녀의 복귀와 동시에 고스트페이스의 살인 행각이 다시 시작되고, 시드니는 충격에 휩싸인다. 시드니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는 게일은 이번 연쇄살인을 계기로 다시 한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취재에 몰입한다. 이미 게일과 결혼해 어느덧 권태기를 맞고 있는 드웨이는 시드니의 비극을 이용하려는 듯 보이는 게일이 못마땅하다. 마침내 드러나는 고스트페이스의 정체 앞에 시드니는 할 말을 잃는다. 언제나 기대하게 되는 오프닝은 1편의 충격이나 2편의 (<데몬스>를 참조한) 기발함에 미치지 못한다. <스크림> 시리즈의 오프닝이라기보다 <무서운 영화>의 오프닝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어찌됐든 웨스 크레이븐과 케빈 윌리엄슨은 이 오프닝을 통해 속편의 정체성을 속시원하게 털어놓는다. <스크림 4G>는 좀더 여러번 반복되는 변주와 자기 조롱 안에서, 여전한 그때 그 친구야말로 가장 재미있는 친구라는 사실을 패기있게 증명해내는 영화다. 예상 가능한 가짜 범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짜 범인의 정체는 전보다 더 찾아내기 어렵고, 살인의 동기는 최소한 3편보다는 훨씬 그럴싸하다. <스크림 4G>가 <스크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이를 둘러싼 시장과 장르적 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언제 또 이 말을 들으면서 깔깔 웃고 두려워하고 무릎을 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겠나. 헬로 시드니.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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