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영화 <인 어 베러 월드>
아카데미 등 수상 ‘인 어 베러 월드’
아프리카 전장·덴마크 일상 배경
끔찍한 삶속 아픈 개인의 치유 그려
아프리카 전장·덴마크 일상 배경
끔찍한 삶속 아픈 개인의 치유 그려
모래바람을 맞고 실려온 피투성이 환자의 환부를 보여주다가, 사람들 사이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 덴마크의 마을로 화면이 갑자기 바뀐다. 덴마크 영화 <인 어 베러 월드>(사진)는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두 공간인 아프리카의 난민촌과 덴마크의 상류층 사회를 113분 동안 번갈아 비춘다. 이 영화로 올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수사네 비르 감독은 아프리카와 덴마크 두 곳에서 영화를 촬영한 이유에 대해 “아프리카의 난민촌이나, 덴마크의 상류층이나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의 폭력들과 그곳에서 파생되는 복수와 용서의 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는 지구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똑같은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답한다.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는 스웨덴 출신의 의사 안톤(미카엘 페르스브란트)이 영화에서 두 공간을 잇는 역할을 한다. 안톤은 자신의 외도로 인해 아내 마리안느(트리네 뒤르홀름)와 별거중인데 여전히 아내와 두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 안톤의 아들 엘리아스(마르쿠스 리가르드)는 ‘쥐새끼처럼 생긴 스웨덴놈’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상습적인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다 전학생 크리스티안(윌리엄 요크 닐센)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고 둘은 가까워진다. 암으로 엄마를 잃은 크리스티안은 아빠를 포함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크리스티안은 온순한 엘리아스에게 ‘폭력을 통한 복수’를 지속적으로 가르치는데, 그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엘리아스는 고심 끝에 크리스티안을 따른다. 한편 아프리카 난민촌의 안톤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잔혹한 반군지도자를 치료하게 된다. 안톤은 의사로서의 책임감에 따라 그를 치료하지만, 인간적인 양심과 학살자에 대한 증오로 고뇌에 빠진다.
영화는 위대한 개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프리카든 덴마크든, 그곳의 방식대로 잔인한 현실을 마주한 나약한 개인을 그린다. 등장인물들이 부닥치는 복수, 용서, 화해의 메시지는 추상적이지만, 영화는 현실의 질감이 느껴지는 개인 간의 갈등으로 이를 풀어내 현실감을 놓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끔찍하다고 외친들, ‘아픈 개인’이 빠지면 이야기는 공허해지거나 촌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테다.
재밌고 감동적인 영화지만, 영화관을 나설 때면 의문이 뒤따라온다. 반복적으로 교차되는 두 세계에서, 용서와 화해는 문명화된 한쪽 세계의 전유물이다. ‘더 나은 세상’(어 베러 월드)은 서구에서 온 박애주의자 의사의 손에 생사를 내맡긴, 검고 깡마른 이들의 세상에선 가능하지 않은 상상이다. “희망을 가득 담은 현실 감각을 주입시켜 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끔찍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일은 세상의 일부를 차지한 관객에게만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수사네 비르는 덴마크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손꼽히는 여성 감독으로, 2008년 국내에서 개봉한 <애프터 웨딩>(2006), 2009년 내털리 포트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로 리메이크된 <브라더스>(2004) 등을 만들었다. 23일 개봉.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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